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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ik Kim Oct 16. 2015

제주에서 시골 유치원 보내기

첫째의 모험

처음 제주도로 내려올 때 첫째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첫째가 누구 아이 아니랄까 봐 아빠를 닮아 상당히 내성적이다. 수원에서 유치원 다닐 때도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친구들 보고도 인사도 못하고, 말도 못 꺼내는 수준이었다. 보다 못해 애 엄마가 애 데리고 여기저기 친구들 집에 일부러 놀러 가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개입까지는 아니고 그냥 친구 집에 가서 알아서 놀도록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

요새 YOUTUBE에 심취한 첫째. 주말만 마음대로 보기로 약속했다.


이제 간신히 수원에서 유치원 생활에 좀 적응해졌고, 친구들과 약간이나마 인사를 나누는데 덜컥 제주도로 가면 애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었다. 역시나 첫째는 우리 이사 간 다고 하니 단호하게 '그럼 나 거기선 유치원 안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고 했다. 아직 5살 밖에 안되었으니 그냥 집에서 내가 데리고 놀아도 될 것 같았다.


7월 10일에 제주도로 이사 와서 2달간 나름 열심히 놀아줬다. 매일같이 바다 가서 놀고, 집에선 각종 소꿉놀이니 역할놀이 상대를 해주고.....

1달간 약 20번은 간 것 같은 금능해수욕장


이게 생각보다 힘든 거였다. 하루 12시간을 놀아줘도 애는 더 놀아주길 바라고... 놀이 상대가 아빠로 제한되니 애가 점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모 입장에서도 애가 다른 놀이는 안 하고 맨날 인형 가지고 '유치원 역할 놀이'만 하는 게 좀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는 사람은 알아보는 레어 아이템 인형



결국 애와 타협을 해서 9월부터 유치원에 나가기로 했다. 자기도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6살 되면 유치원 간다고 했던 자신의 결정을 뒤집었다. 좀 알아보고 유치원은 집에서 제일 가까운 무릉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으로 결정했다. 제주에 있는 학교들이 그렇듯이 파란 잔디가 인상적인 학교였다. 


무릉 초등학교 전경
저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이 병설 유치원

처음 유치원에 가던 날. 애는 많이 긴장했다. (부모도 긴장했다. 한번 가보고 울면서 다시 안 가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

아니나 다를까 유치원 입구에서부터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집에 가겠단다. 선생님과 난처한 눈빛을 교환하며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다시 오자라며 달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또 집으로 가던 길에 과자를 사서 다시 유치원에 가겠단다. 자기 딴에는 엄청나게 용기를 낸 거였다. 올타쿠나 하고 마이쭈 하나를 사서 손에 쥐어주며 다시 유치원에 집어넣었다.


무릉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은 5세부터 7세까지 합반으로 운영하고 전체 인원이 8명이었다. 그나마 5세는 첫째 포함해서 2명이다  ㅋㅋ..

그날 오후 유치원에 애를 데리러 가니 표정이 한결 좋다. 유치원에 언니나 선생님과 눈도 못 마주치고 땅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기분이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날 새로 친구가 온다며 유치원 아이들이 모두 예쁜 옷을 입고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도 새로 전학(?) 오는 아이가 화제였단다. 쉬는 시간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유치원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쟤야?' 하고 수군거렸단다. 그리고 초중학교 통합 교장을 하는 교장선생님이 유치원에 애한테 인사를 하러 왔었다고 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작은 동네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아이는  난생처음 경험해 본 대중의 관심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애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데 웬 아저씨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잡초를 뽑다가 "나현아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누군지 몰라서 뻘쭘하게 인사를 했는데(아빠도 내성적이다) 그 아저씨가 교장선생님이었다 ㅋㅋㅋㅋㅋㅋ 이곳 교장 선생님은 유치원, 초중학교 아이들 전체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아침마다 교문에 서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면서 인사를 한다.


부모 입장에서 참 마음에 들었다.


유치원도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일체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어디 소풍이나 견학을 가던지 특별한 활동을 하던지  뭐든... 별도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소풍 갈 때 삼다수 작은 거 1병과 과자 1개 정도만 사주면 된다. 나머지 도시락을 포함한 모든 비용은 자체 경비로 처리가 가능하단다.  수원 유치원에 다닐 땐 무슨 돈을 매달 이리저리 냈는지 의문이다.


유치원 생활  측면에선.. 5~7세 아이들이 같이 뒤섞여 놀다 보니 7세 언니들이 동생들을 돌봐주는 분위기인듯하다. (이 유치원에 8명 중 6명이 여자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여성적인 분위기다 ) 애 말로는 가끔 초등학교 언니들이 유치원에 싸우러 온다는데...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_-;;... 그냥 애가 웃으면서 자기는 구경만 한다기에 그냥 8세 언니들과 7세 언니들간의 다툼이 있겠거니 할 뿐이다.

언니들이 위험한 놀이도 많이 가르쳐줬다.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그래도 지켜본다. 지켜보는게 부모의 역할.

 


이제 유치원 다닌지 1달 보름 정도 지났는데 만족스럽다. 애도 점점 활발해지고, 집에 와서 유치원 언니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누구 언니네 엄마는 엉덩이에 큰 주사를 맞았고, 누구 언니는 어릴 때 크게 다친 적이 있고 등등... ( 반대로 우리 집 사정도 이 녀석이 꼬치꼬치 다 말하고 다니는  듯하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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