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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ik Kim Nov 13. 2015

중간방

  뒷방, 복도

 우리가 사는 집은 제주도의 구옥을 개량한 집이다 보니 구조가 특이하다. 제주도의 구옥은 입구로 들어서면 세로로 긴 마루가 하나 있고, 그 마루 왼편으로 큰방이 하나. 오른편으로 작은 방이 2개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큰방 뒤편으로 작은 부엌이 있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 옆으로 벽돌을 쌓아 새롭게 부엌을 신식으로 만들었다. 자연히 원래 부엌으로 쓰던 공간은 방으로서의 기능은 희미해지고 마루에서 새롭게 만든 큰 부엌으로 가는 통로 역할이 되었다. 그 방의 명칭은 늘 바뀐다. 통로 방, 가운데 방, 뒷방, 중간방 등등.. 나는 그냥 중간방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왠지 공간이 아까워서 그 통로로나 씀 직한 방에 이것저것 가져다 놓았다. 
우선 기다란 아이 책장과 책상을 가져다 통로 양쪽에 나란히 놓고, 예쁜 빨간색 갓이 달린 전구 등도 걸어놓았다. 어른이 쓰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아이는 몸집이 작으니 거기서 혼자 책도 보고 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기대대로 아이는 그 방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사실 마루 오른편에 큰방보다도 더 큰 놀이방을 따로 만들어 뒀음에도 아이는 중간방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다.  방이라기보다는 통로에 가까운 크기인지라 아이가 책상에서 다리를 뻗으면 발이 반대쪽 벽면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다. 아이는 그 안에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면서 잘도 논다.... 아빠, 엄마와 함께 말이다.

어느 날 밤이던가 우리 식구 4명이 옹기종기 중간방에 모여 앉았다. 이제 5살 난 첫째는 바닥에 엎드려서 글씨 연습을 하고, 10개월이 된 둘째는 지 언니 옆에서 언니가 하는 양을 흉내 내며 색연필을 가지고 종이에 마구 휘저었다. 마누라는 그런 둘째가 휘두르는 색연필이 첫째를 방해할까 봐 은근히 둘째를 떨어뜨렸다. 둘째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눈치가 좋은 건지 언니랑 멀어지는걸 알아채고 아등바등 기어서 자기 언니 옆으로 가서 또 흉내를 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루도 있고, 놀이방도 있는데 왜 굳이 다들 이 좁은 방에 모여 앉아서 이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좁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 4 식구가 아늑하게 있으려면 2평 남짓한 이 좁은 공간만 있으면 되는 거였구나 싶기도 했다.


일전에 북극탐험을 하고 돌아온 분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 찾아보니 http://zepero.com/1069 이 분이다)


전 SNS도 하지 않고, 제 탐험을 어디 인터넷에 올리지도 않아요.
전 제 가족만 절 인정해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저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다. 그냥 이거 사기  아냐?라는 생각도 들고 한동안  뒷조사하느라 검색도 좀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렴풋이나마 저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 경험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내더라도 가족이 그걸 싫어하면 말짱 헛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하는 일들 앞으로 할 일들이 외부에 인정을 받는 것도 좋지만 우선 가족들이 그 결과물을 좋아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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