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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ik Kim Sep 12. 2015

넓은 집이 주는 해방감

시골 주택 예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나도 상당히 작은 집에서 시작을 했다.

대학 다닐 때는 1.5평짜리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살다가 하숙방으로 옮기고, 옥탑방도 살아보고...

고시원 시절 침대에 누워서 찰칵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는 생전 처음으로 빌라라는 곳에도 살아봤다. 서울 화곡동의 다세대 빌라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열악한 곳이었다. 차로도 올라가기 힘든 급경사 하며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이래저래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네 살면서 내 운전실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cm 단위로 주차를 하려다 보니..;; )


좁은 공간에 살면 사람의 시야도 좁아진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시야가 상당히 좁아졌다. 바로 눈 앞의 일에 허덕이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힘들면 고시원 앞 제기시장을 거닐곤 했다


처음으로 내 명의의 아파트를 장만한 건 회사생활을 시작하고서도 3년이 지난  후였다. 뭐 물론 집의 70%는 은행 소유였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뭔가 생활이 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었다.

규격화된 삶.

매주 수요일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면 되고, 마트는 집 앞 홈플러스를 가면 된다. 산책은 아파트 주변 공원을 거닐면 된다.


그 규격화된 삶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고, 그 이후 이사를 하면서도 항상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무엇보다 마눌님이 아파트를 좋아했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거 버리기도 편하고, 알아서 주변 청소도 해주고, 택배도 경비실에서 받아주고,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각종 생활 편의 인프라가 주변에 잘 갖춰진다. 마트, 병원, 약국 등등..

나름 골프장이 보였던 수원 아파트


마지막으로 수원에서 살았던 아파트는 정말 최고의 인프라였다. 이마트가 걸어서 3분 거리였고, 여름이면 물놀이터로 변신하는 큰 공원도 3분 거리, 일요일도 문 여는 소아과와 약국이 2개 이상이었다. 도서관도 걸어서 10분거리였다. 


그러다가 홀연히(?) 제주로 오면서 농가 주택을 구매했다. 집은 작은데 딸린 대지가 250평이다.

마당과 정원에 반해서 덜컥 사버린 시골 주택. 꽤나 수리 많이 해야 했다

 

약 100평 정도의 텃밭도 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집의 모든 게 내 손을 거쳐야 했다. 하다못해 수도꼭지가 고장 나도 내가 고쳐야 했다. 난생 처음 샤워기를 직접 설치했다. 그래도 이과계열이라고 대충 어찌하다 보니 감이 오긴 왔다. 집에 전등도 전선 빼다가 드릴질 해 가며 직접 설치했고.. 아파트에 살 땐 몰라도 상관없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챙겨야 하는 것이다.


밭은 어떻게 할 것이며. 집 앞 화단, 마당의 잔디, 집에서 추가로 수리가 필요한 부분들, 보일러에 기름 잔량 체크, 정화조 청소 등... 정말 생각과 달리 한가할 틈이 없었다.


거기에 시골이다보니 주위 환경도 상당히 달랐다. 동네에 슈퍼가 없다. ... 이하 생략하겠다...


그러다가 내 의식이 이 집의 공간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순간이 왔다. 기존에 28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잡던 내 시야가 250평의 시야로 바뀌었다. 한없이 넓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그냥 적당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해방감이 몰려왔다.  기존에 규격화된 삶에 대한 해방감이다.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오롯이 나의 활동들이고, 나만의 경험이다. 그냥 내가 해보고 싶은 건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아파트 살면서는 공간의 제약으로 할 수가 없었던 자동차 정비도 집 창고에서 직접 했고, 애들하고 마당에서 캠핑도 했다. 요샌 피자 구워먹을 화덕을 구상 중이다. .. 결심만 서면 단독 주택을 2채 정도 추가로 더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직접 집 지을 용기까지는 나지 않는다...^^; )


 아파트에 살 때는 내가 뭔가를 창조하지 않고 늘 남이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입장이었다. 애랑 놀러갈때는 공원에 갈 것인지, 에버랜드로 갈 것인지, 서울랜드로 갈 것인지.. 하는 식이다. 삶이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뀐 기분이다. 


시골 주택으로 이사온지 이제 딱 2달이 넘어간다. 상당히 만족스럽다. 

(..단 마눌님은 아직 불편해한다. 인프라도 없고, 벌레 많고, 주위에 지인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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