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생활 #1 집
나는 고양이 한 마리와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이 집에서 집이 곧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달팽이의 집에 달팽이의 생명을 유지하는 주요 장기가 들어있듯이 나의 집에도 내 삶이 들어있다. 일과 생활, 안락함과 고양이 그리고 나 자신까지 이 작은 집 속에 다 들어있다. 나와 교류하고 있는, 그러니까 이곳에 다녀간 모든 사람들의 흔적도 이 집 어딘가에 조금씩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뇌 구조 그리기’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만약 지금 나의 뇌 속을 그려본다면 우리 집의 내부와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이 집에서 침대와 책상이, 고양이와 안락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내 뇌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지분과 일치하지 않을까.
가끔 사람들에게 공간을 잘 가꾼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용하는 공간에 일관된 느낌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그때그때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장소와 시간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나에게도 그런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재능이 그렇듯 나의 재능도 필요로 인해 생긴 것이다. 불안이 많고 긴장을 잘하는 탓에 아늑한 자리를 알아보는 감각이 발달한 것 같다. 자기 자리에서는 느긋한 고양이도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겁이 많아지는데 나도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공간이나 자리에 유별난 애착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주방 한켠에 있던 식탁 밑에 내 공간을 따로 만든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 집 식탁에는 길게 늘어진 체크무늬 식탁보가 둘려있었는데 나는 그 밑으로 들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다. 형제가 없어 꽤 어린 나이 때부터 방을 혼자 썼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종이상자 같은 것을 구해서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 가 책상이라며 팔을 괴고 앉아 있곤 했다. (그때부터 책상을 좋아했다, 책상을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한동안 그곳을 진짜 내 방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한참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에 내가 식탁 밑에 내 공간을 만든 걸 알고 있었냐고.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의 기억이 흐릿해진 것인지 내가 고양이처럼 잘도 숨어있던 것인지(나는 항상 조용히 사고를 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모르겠지만 식탁 밑에 있었던 내 방의 존재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내 공간에 대한 유별난 애착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간을 혼자 쓰는 내 집이 생긴 건 최근의 일이다. 화장실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오로지 나의 편의에 맞추는 일은 불안정했던 삶에 안정을 가져왔다. 비로소 내가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는 어른이라는 실감도 그제야 들었다. 어딘가에 나만을 위한 은신처가 있다는 사실은 바깥의 많은 일들을 견딜만하게 해 줬다. 어린 시절 주방의 식탁 밑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자신을 실내형 인간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혼자 살 게 된 후로 더욱더 집에서 모든 것을 하고 있다. 혼자 잘도 지내고 있다. 고양이 한 마리와 몇몇 식물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