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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Feb 28. 2021

여의도 김원장과 국민체조

박연습의 단련일기



점심을 먹고 SNS를 구경하다가 pahadi 님의 만화를 봤다. 만화에는 '누울 수 있는데 왜 앉지?’라고 적혀있다. 동감이다. 나 역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다. ‘누울 수 없을 때 앉고, 앉아야 할 때만 앉는다'라는 게 지금까지 내 삶의 몇 안 되는 분명한 철학이었다. 소리 내어 주장한 적은 별로 없지만. 


얼마 전 TV 예능프로 ‘놀면 뭐 하니’에서 정세랑 작가는 작업실이 따로 없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은 누워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나도 집에서 일하고 허리가 안 좋다. 그래서 내가 자꾸 눕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됐건 눕는 건 좋지만 식후에 눕는 건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정적 계기는 아빠의 입 냄새였다. 이것은 좀 슬픈 이야기인데, 어느 날 아빠의 입 냄새가 심상치 않아서 이야기해보니 식도염이 원인인 것 같았다. (얼마 전 목에 이물감이 들어서 병원을 찾았을 때 식도염이 있다고 들었다고 한다) 걱정이 돼서 스마트폰으로 식도염의 원인 및 예방 방법 등을 찾아보았다.  


'식사 후 바로 눕는 습관이 있으면 역류성 식도염 발생 가능성이 커집니다.' 


지금처럼 밥을 먹고 계속 누워있다가는 나 역시 역류성 식도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식도염이 생기면 입 냄새가 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좀 곤란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고로 식도염의 원인은 다양하고 아빠의 식도염은 식도 근육의 노화로 인한 것이라 잘 때 베개를 조금 높게 베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처음에는 눕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베개를 높여서 앉아있는 것 같은 상태(?)로 누워있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배가 부르면 잠이온다. 잠이 들면 목을 가누기 힘들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작년 봄 무렵 춘곤증이 겹쳐 식후에 꼬박꼬박 한 시간씩은 잔다고 지인에게 고백했다가 그 정도면 신생아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언제까지 신생아처럼 살 수는 없지. 그래, 먹은 후에는 눕지 말자. 


식후에 눕지 않기 운동이 시작됐다. 식후에 운동이나 설거지 등 다른 할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식후에 하면 안 되는 것은 많은데 식후에 하면 좋은 것은 딱히 없어 보였다. 차를 마시는 것도, 과일을 먹는 것도, 격한 운동도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하니 짧은 산책과 같은 가벼운 운동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유튜브에 ‘식후 운동’ ‘점심 운동’ 등으로 검색을 했고 그렇게 여의도 김원장님을 만나게 됐다. 


나는 1월 한 달 동안 물리치료사의 폼룰러 마사지, 국민체조, 김원장님의 점심시간 10분 체조 이렇게 3개의 영상을 보며 수련했는데 식후 운동으로는 여의도 김원장님의 점심 체조가 제격이었다. 폼룰러 마사지는 도구가 필요해서 시간이 여유로운 저녁이 좋고, 국민체조의 활기찬 분위기는 점심보다 아침이 어울린다. (아침에 잠이 안 깬다면 국민체조를 추천한다) 나른하고 배부른 오후에는 김원장님의 점심 체조만 한 영상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의도 김원장님의 영상은 매력적이다. 여의도공원을 배경으로 어딘가 현대적인 음악(해당 영상의 2분 55초 무렵)이 깔리고 원장님의 개량한복과 폰트의 적절한 조화에 시선을 떼기 어렵다. 사실 원장님이 동작을 말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자막을 계속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자막의 폰트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글자를 다루는 편집 디자이너로서 내 소견을 밝히자면 해당 영상의 폰트는 '폰트 좀 써 본 사람'이 영상의 분위기에 맞춰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영상과 찰떡이라 진심으로 감탄했다) 운동의 난이도 역시 식후 체조로 손색이 없다. 




식후에 눕는 습관이 고민인 분들에게 김원장님의 점심 체조를 권하며 이글을 마친다. 



> 고치고 싶은 나쁜 습관이 있다면 대체할만한 좋은 습관을 찾는 게 좋다고 한다. 나는 요즘 식후에 바로 눕는 습관을 '설거지'와 '간단한 운동' 혹은 '짧은 산책'으로 대체하고 있다. 여전히 전처럼 누워 있기도 하지만 식사 후에 '눕기' 외에 다른 선택지가 생겼으니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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