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정의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는 지구를 구하는 독수리 오형제나 캡틴플래닛이 되고 싶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정의를 지키는 일에 제일 가까운 일은 언론인이나 법조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2 때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러 갔답니다. 수업을 하루 안 한 것이지요. 예~!
우리는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음악 선생님이 된 글렌 홀랜드가 말썽쟁이 아이들을 맡아 고군분투하다가 좋은 선생님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랭이라는 여학생이 클라리넷 연주를 배우는 장면이었습니다. 빨간 머리카락이 콤플렉스인 랭은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클라리넷 연주에는 더더욱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죠. 연습을 해도 클라리넷은 좀처럼 늘지 않아요. 홀랜드는 연주를 멈추게 하고, 랭에게 살아오면서 제일 즐거운 일을 떠올리라고 해요. 랭은 아버지가 자신의 빨간 머리카락을 보면 노을이 떠오른다고 했던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노을을 생각하며 연주해보자는 홀랜드의 말에 랭은 클라리넷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홀랜드가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음악 선생님이 되어 가는 과정과 퇴임을 하는 홀랜드를 위해 모인 졸업생들의 연주를 보며 저와 친구들은 펑펑 울고 말았어요. 영화를 보며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에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3학년에 올라왔고, 우리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체육 선생님께서 우리 반 담임을 맡을 것이라는 비보가 들려왔습니다. 오, 저는 그 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어요. 늘 3학년 수업만 하셨는데 학급이 줄어들면서 2학년 반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 반 체육 시간에 들어오셨는데 정말 많이 혼났거든요. 저는 운동을 무지하게 못 해서 더 많이 혼났지요. 더 놀라운 것은 다음이었어요. “쾅” 하는 소리가 나고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거든요.
“김미영! 자리에 앉아. 조은지! 너는 왜 거기 있는 거야? 주인우! 거기 손걸레 좀 빨아 와서 여기 좀 닦아!”
헐~ 오늘은 개학 첫 날인데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이름을 알고 계셨어요. 나중에 말씀해주셨는데 개학 전 한 달 동안 아이들 이름을 열심히 외우셨다고 해요. 그리고 조회와 종례 때는 항상 인사를 하는데 우리 반 인사는 조금 독특했어요. 회장이 “차렷! 경례!”를 하면 아침에는 “아빠, 집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갈 때는 “아빠,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이 인사법이 불편했습니다. 왠지 우리 아빠한테 미안했거든요.
몇 개월이 지났을까요. 공부와 음악, 미술, 체육 모든 것을 잘 해서 때때로 부럽기도 했고 항상 당당하고 멋있는 친구 한 명이 비밀이 있다고 했습니다. 너만 알고 있으라면서요. 자신은 사실 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고백을 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빠’라고 부를 수 있어서요. ‘아빠’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그냥 좋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한 번도 아빠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대요. 그리고 이런 고백을 우리 반 다른 친구들에게서 두 번을 더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어 주셨습니다. 아빠가 없는 아이들, 또는 아빠에게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되어 주셨지요. 겉모습은 무서웠지만 마음이 깊고 따뜻한 분이셨어요. 우리 모두가 아빠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학생들이 친구들 속에서 1년 동안 아빠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해주셨던 거예요.
우리는 중3이었기 때문에 진학을 어디로 할 지 정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여상을 1지망에 썼고, 저는 싫다고 했지만 그 종이를 제출했습니다. 선생님은 놀라셨지요. 제가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데 상업 계열로 가겠다고 했으니까요. 선생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바로 취직을 할 수 있는 상고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제 의지로 쓴 지원서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눈치 채셨어요.
선생님은 우리 식당에 두 번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인문계 학교에 진학시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왜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지 않고 식당에 찾아오셨는지 제가 교사가 되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이 인문계 고등학교 학비도 낼 수 없는 형편인지 아마 알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가게를 보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시고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하셨지요. 아이가 인문 과목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니 인문계 학교를 보내서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선생님이 계속 찾아오시니 아버지는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인문계 여고에 입학했고, 인문계열의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되어 주셨던 중3 때 담임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소망과 꿈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때때로 그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도와주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날카롭게 기사를 쓰거나 어려운 사람을 변호해주는 일보다 이 일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정의를 세우는 사람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아 제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서툴러도 아이들이 저를 믿는 이유는 제가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하고 격려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교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학생들의 마음을 다 읽어내지 못 합니다. 여전히 한국의 학급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있고, 교사의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잘 귀기울이지 못 했을 때, 참 많이 미안합니다.
청소년 여러분, 선생님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라도 자신의 소망을 이야기 해주세요. 마음을 다 읽어낼 수 없더라고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그러실 거예요. 여러분이 꿈을 키워나가는 데에 분명 작은 도움이나마 도움을 주시고, 또 힘이 되어 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