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다.

우리는 모두 시작할 수 있다. 내가 꿈꾸던 것을...

by 주인우

꿈꾸는 소녀


꿈이 많은 아이가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관심 있는 것도 많았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모두 좋아하는 일이었고,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장 즐거울 때는 무대에 설 때였다. 무대 위에서 인물을 연기할 때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인물을 분석하고 연습하는 과정도 모두 즐거웠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깔깔대고 웃거나 눈물을 터뜨릴 때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었다. 어떤 감정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연기를 잘했다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공부를 잘했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이가 변호사나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는 한 번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연기나 방송하는 동아리 활동을 했을 때, 어른들은 공부할 시간을 많이 뺏기니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늘 방황했다. 사람들이 가야 한다고 종용한 길과 가고 싶었던 길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했다. 아이는 대학생 때 가장이 되었고, 역사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가슴에는 뜨거운 불 같은 것을 품고서 차가운 학문을 열심히 공부했다.


새로운 만남


사명감 하나로 버티던 학교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상담사는 트라우마라고 했고, 병원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먹으라고 했다. 치료를 받으며 학교를 꾸역꾸역 나갔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연구회를 두 개나 돌리면서 기계적으로 학교를 왔다 갔다 했다.


그 와중에도 연극 관련 연수 공문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회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신청했는데 일주일 만에 극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바쁜데 그만 들을까 싶었으나 연수 강사가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고, 선생님들이 주인공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서 빠지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극을 구성하고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마침내 무대에 올라가서는 그 해에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사직서를 냈을까. 나는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논문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무대에 섰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연수 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용기로 전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 저... 연기가 배우고 싶어요. 그냥.. 배우고 싶어요. 아주 잘해서 그게 밥이 되면 정말 좋은 거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제 연기랑 같이 가고 싶어요. 내 삶에서 연기를 놓고 싶지가 않아요..."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선생님이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신데 같이 기초라도 배워보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 즐겁지만 또 괴롭게 그리고 치열하게 연기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함께 고민했다.


새로운 도전


발성과 화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신체 훈련을 받았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고민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을 하나씩 접목시켜보았다. 희곡을 읽는 것도, 이론서를 읽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즉흥 연기를 할 때에는 나의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다. 어떤 상황이나 주제가 주어졌을 때,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잘했다. 그러나 희곡의 대사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인물 분석을 열심히 해놓고도 인물로서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훈련이 많이 필요한 것이구나, 너무 늦었을까? 훈련이 반복되면서 내가 인물의 감정의 바닥까지 도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한 번 깨어져야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이 어느 날, 한예종 시험을 보면 좋겠다고 했다. "뭐라구요?" 내가 막 웃었다. 한예종 시험을 어떻게 보냐면서. 그러나 선생님은 진지했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내가 이 경험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해야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을 하다가 떨어지면 또 어떠한가 싶어서 해보겠다고 했다.


퇴직금이 떨어진 찰나에 수능 출제를 가야 하니 한 달만 살려달라는 선배네 학교에서 한 달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었다. 시험도 한 달이 남았다. 내가 쓴 대본인데도 대사가 계속 꼬였다. 인물의 감정이 이해가 되지 않기 시작했다. 작가로서 만나는 인물과 배우로서 만나는 인물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 인물이 어떤 감정일까, 어떤 톤으로 말했을까, 어떻게 움직였을까..


시험장에서 만난 많은 배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긴장감을 풀어내고 있었다. 간절히 합격하고 싶은 마음과 서로에 대한 연민이 어우러져 여타 시험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누군가 발성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각자의 방법대로 몸을 풀고, 목을 풀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주어진 대사를 하고,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합을 맞추는 1차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2차 시험에서는 준비해 간 대사와 간단한 면접을 했다. 나의 연습은 충분하지 못했고, 나의 첫 번째 무대는 그렇게 실패했다. 심사위원들은 독특한 이력에 호기심과 함께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배우로서 나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실패, 그리고...


더 큰 힘이 났다. 실패했지만 즐거웠고, 나의 속도로 계속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훈련을 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확신이 외려 실패한 순간에 들었다. 나의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빼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함께 가야겠구나. 나는 그렇게 연기를, 연극을 사랑하는구나.


1년의 공백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비로소 나의 꿈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 불혹을 바라보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욕을 먹을 각오로 친구들에게 한예종 시험을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모두 잘했다고 했다. 정말 잘했다고. 짧은 인생인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예종 시험은 4번이 기본인 거 알지? 그래서 위로 안 한다."라는 친구도 있었다. 욕을 먹었으면 안 울었을 텐데 친구들의 격려에 눈물이 났다.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각자의 방법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무대 경험을 쌓아야겠다, 교육극단에 들어가 교육에 대한 고민과 연기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코로나-19 때문에 극단 아니라 극장에도 갈 수 없는 환경에 있고, 온라인 수업 때문에 매일 녹초가 되고 말지만 나는 매일 꿈을 꾼다.


아주 작은 나의 미니 카가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의 음률로 가득 찬다. 배에 힘을 주고, 숨을 고르게 내뱉으며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학교 앞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사서는 꽃으로 둘러싸인 대강당 앞에 주차를 한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색색이 고운 꽃들과 눈을 마주친다. 4월의 주인공인 라일락 향기가 코 끝을 찌른다. 차에서 마저 부르지 못 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6.25 쯤에 지었다는 낡은 학교 건물로 들어선다. 그렇게 매일의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한다.


나는, 배우다


매일 발성 연습을 하고, 짬이 나면 캐릭터 연구를 한다. 소프트 포커스와 움직임 연습을 한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 워크숍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 아니지만 매일 연습을 한다. 배우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까.


내가 설 무대가 없지만 교단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나만의 무대를 만든다. 옛이야기들을 베테랑 학생이라는 무시무시한 관객들 앞에서 정확한 발음과 발성으로, 때때로 진실된 감정을 전달하며 작은 무대를 만든다. 프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조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있고, 배우가 있고,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으니 이곳은 무대가 된다.


나는 여전히 연기를 배운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배운다.

나는 배운다.

나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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