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치러졌다.
수시모집이 많고 수능 최저등급 없는 학교도 많아 예전만큼 온 나라가 떠들썩하진 않지만 역시 수능은 고등학교에서 한 해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김없이 감독관이 되었다.
수능 감독은 짤없이 나이로 잘리므로 우리 같이 허리에 있는 나이 대의 교사들은 본부 요원이거나 감독관이다. 무엇이 쉽다고 할 수 없다. 모두 다 긴장되는 일이다. 다만 본부 요원은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므로 나는 시험장 감독을 더 선호한다.
수능 전날에는 감독관 연수가 있다.
학교 위치도 확인해야 하고 수능 감독 시 주의사항은 매년 들어도 매번 헷갈린다.
1년에 한 번만 보니까 베테랑 교사들도 약간의 여유가 있을 뿐 올해 달라진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감독관 연수 날 제일 중요한 것은 도장을 가져가 등록하는 것이다. 그날 등록하지 않으면 모든 답안지에 정자 서명을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학생들이 오래 걸린다고 눈을 흘길지도 모르지만 역시 팔이 아프므로 성과 이름이 모두 있는 도장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수능 감독관 차량 종이를 받아오는 일이다. 한 장 밖에 안 주는 소중한 이 종이를 잃어버리면 차를 가지고 올 수가 없다. 수능 감독은 소속된 학교의 옆 교육청이나 옆에 옆의 교육청 소속 학교가 될 때가 많아 꽤나 멀다(가끔 되게 먼 교육청 쪽으로 당첨될 때도 있다.). 그리고 7:30에 감독관 회의이므로 감독관은 대개 7시에서 7:20 사이에 와야 한다. 그러니 역시 대중교통으로 오는 것은 몹시 고되다. 그래서 저 소중한 종이를 꼭 챙겨야 한다.
감독관 차량을 타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일은 뭔가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다. 통제된 구역에 경찰이 길을 비켜 주며 너만 들어가라는 신호를 해주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아 잠깐 설렌다.
같은 학교에서 온 교사들끼리 다음날 아침에 모여 떠드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이번에 이게 바뀐 거냐고 서로 물어보며 정보를 다시 업데이트한다. 학력평가를 여러 번 보지만 사실 수능처럼 감독하는 학교가 어디 있겠나… 매번 수능 감독은 어렵다.
감독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제2외국어 감독 당첨인가 아닌가 이다. 퇴근 시간이 달라진다. 대체로 젊은 교사들은 제2외국어 확정이므로 나도 당연히 6시까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에서 온 감독관 중에 반을 나누면 나이가 많은 축에 들어가지만 학교에선 모두가 나에게 “젊은 교사”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자꾸만 내가 젊은이인 줄로 착각할 때가 많다.
두둥… 감독비가 젊은 선생님들에 비해 만원이 적다… 이것은 4교시까지만 하고 집에 가라는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몹시 크다. 아! 나는 드디어 젊은 교사를 벗어난 것이란 말이다!
매 시간 감독표가 붙으므로 누가 몇 교시 감독이 될지 모른다. 본부 선생님이 감독관 대기실에 다음 시간표를 붙일 때마다 뭔가 엄청난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제일 젊은 교사는 벗어났지만 역시 젊은 교사라 1,2,4교시 당첨!
1교시 언어는 80분이지만 수거할 물품이 많아졌고(기술의 발전을 우리는 싫어한다…) 본인 확인도 꼼꼼히 해야 해서 감독관이 들어가는 시간도 길고 제일 긴장되는 때이다.
2교시 수학은 서로 간의 긴장이 약간 풀어져 조금 낫지만 100분으로 제일 길어서 매우 힘들다.
그리고 대체로 이른바 젊은 교사들은 1,2교시 연속 들어가므로 매우 지친다. 중요한 것은 중간 쉬는 시간에 반드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날 감독관 연수에서 빨간색으로 별표까지 쳐놓은 것은 여자 화장실 위치였다. 남학교라 여자 화장실아 없을 것 같아 긴장되었나 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아마도 수험생보다는 역시 감독관들이 엄청나게 기다리는 시간!
점심시간 50분인데 감독관에게는 매우 짧다.
2교시 감독하면 답안지 문제지 제출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걸리고 급식 줄 서서 받고 밥 먹고 나면 겨우 화장실 갈 시간이 되거나 가끔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다.
2,3교시 연속 감독이라면 밥을 매우 빨리 흡입하고 뛰어가야 한다. 디저트를 못 먹게 되면 좀 아쉬운 일이지만 역시 베테랑 선생님들은 디저트를 챙겨서 감독관실로 가져가신다.
제일 짧은 3교시 감독 시간에 잠깐 숨을 돌려본다. 이 때라도 잘 쉬지 않으면 안 된다. 허리가 아프니 잠깐 걸어보거나 때때로 엎드려 숙면을 취해 보기도 한다.
3교시가 간식 나올 타임이므로 나는 간식을 기다려 본다. 간식이 1인용으로 포장되어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기 있는 간식을 우리 학교 쌤들 숫자 정도만큼 쉬는 사람이 챙겨 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간식을 하나도 못 먹게 되기도 한다.
다행히 여기는 포장되어 나왔다. 본부 요원들의 고충도 얼마나 클까 생각해본다.
3교시는 듣기 평가가 있으므로 감독관도 다소 긴장해 있는 시간이다. 한 번은 CD가 튀어서 1개 문항이 안 나온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려고 해서 재빨리 마지막 문항 뒤에 들려줄 테니 동요하지 말고 문제를 풀라고 했다. 학생들이 안심하고 문제를 풀었다. 마지막 문항 뒤에 문제를 들려줄지는 사실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수험생들을 안정시키고 복도 감독관에게 문의하려고 했다. 다행히 마지막 문항이 끝나고 한 문제를 들려준다는 방송이 바로 나와서 큰 문제없이 시험이 마무리되었지만 감독관은 역시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4교시 한국사와 탐구 영역.
한국사를 필수 영역으로 지정한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데 필수면 1교시에 할 것이지 왜 4교시에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만 보는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3교시까지 멍을 때리다가 4교시에 한국사만 보고 집에 간다.
그런 교실에 감독관 당첨이면 그 해에 운을 다 쓴 것!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좋았다.
탐구 영역이 문제지도 많고 학생이 두 장을 실수로 뽑거나 하면 부정행위 처리를 당할 수도 있어서 가장 긴장이 많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2,4 감독을 마치고 젊은(?) 쌤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처음으로 외국어 영역 감독을 하지 않고 집으로 향해 본다.
수능 날 외국어 영역 감독하고 차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면 두 시간 이상 도로에서 시간을 날려야 하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나가 본다. 그래도 수험생들 데리러 오신 학부모님들이 많아 시험장 근처를 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코로나 때문에 감독관도 수험생도 모두 더욱 고생한 수능 날도 저물어 간다.
흰 봉투에 든 감독비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 쓰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ㅎㅎ 감독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선생님들끼리 밥이나 먹고 들어가려고 만든 이야기인 것 같다.
온 나라가 난리인 그날.
교사로 10년 넘게 살고 있고, 참 익숙한 날이지만, 수능 날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고,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조금은 행복해지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1년 대학 수학능력시험 때 느낀 것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