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것이 꽃인 줄 안 것은 여덟 살, 첫 소풍 때였다.
“엄마, 눈 와~ 봄인데 눈 와~”
“이건 눈이 아니라 꽃이야.”
“꽃이 왜 하늘에서 내려?”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꽃잎이 떨어지는 거야. 이 꽃은 벚꽃이야.”
그날 나는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하나도 못 찾았다. 실은 그 이후로도 보물 찾기를 해서 보물 쪽지를 찾은 적이 없다. 엄마가 몰래 하나를 찾아줬다. 선생님이 엄마들한테 절대로 찾아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엄마는 내가 안타까웠나 보다. 쭈뼛거리며 학용품을 하나 받았던 것 같은데 보물 찾기에 실패한 것이나 학용품을 받은 것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밥 위로 내려앉던 눈같이 흩날리던 꽃잎만이 생생히 기억날 뿐이다.
학생들이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한다. 하긴 대학 중간고사 기간과 벚꽃 피는 기간은 유난히도 꼭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나와 잠깐 환기를 시킬 수 있어 좋았다. 관악의 벚꽃은 정말 예뻤는데 친구들이랑 기지개 펴며 그 길을 걷던 것이 대학생활의 제일 예쁜 한 장으로 기억된다.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프고 나서는 벚꽃이 싫었다. 꽃잎이 나리는 벚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 보이고 나만 불행한 것 같았다. 운동장에 활짝 핀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학생들을 보면서 모두 먼 타인들처럼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벚나무는 또 추억이 되었다. 지리쌤이랑 사진을 찍고, 깜빡하고 핑크색 슬리퍼를 신고 사진을 찍어서 모두의 놀림감이 되었지만 벚꽃은 슬픔과 불행 속에서 우정과 추억을 싹 틔우게 해 주었다.
올해 벚꽃은 드디어 모든 학생들이 등교한 날에 보았다. 아이들은 드디어 모두가 학교에 왔으니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한 친구도 격리되지 않고 모두가 학교에 온 것이 아이들도 참 기쁜가 보다. 그래, 나도 결석 관련 서류 안 만들어 기쁘구나!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벚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과제를 내주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긴장한 몇몇 아이들이 쉬는 쉬간에도 쉬지를 못하고, 점심시간에도 밥을 안 먹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잠깐 산책하며 긴장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에 과제를 내주었더니 집 앞에서지만 예쁘게 포즈를 짓고 사진을 찍은 모습들이 참 예쁘다.
“선생님, 벚꽃 피는 시기가 너무 짧아요. 벌써 다 지는 것 같아요.”
“짧아서 아름다운 거야.”
“왜 짧아서 아름다워요? 1년 내내 피면 예쁠 텐데….”
끝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직 열일곱 살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짧아서 아름답다고 했지만 실은 예쁜 꽃이 지는 것이, 이 봄이 또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