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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Feb 11. 2020

모든 작품은 아름답다


고등학교는 왜 작품 게시를 하지 않을까?


  초등학교에서는 게시판에 학생들 작품을 많이 전시합니다. 중고등학교에 오면 학생 작품을 별로 걸어두지 않지요. 게시판에는 대부분 공지사항들이 붙어있습니다. 최근에는 수행평가 관련 공지사항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혁신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무척 새로웠습니다. 학생들 작품이 굉장히 많이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붙일 수 있는 벽이 있으면 학생들 작품이나 학생들 의견이나 학생들의 연구 내용 같은 것이 잔뜩 붙어 있었지요.


  특히 국어 수행평가 작품 전시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급식’이라는 제목의 시화에는 그 날 급식 반찬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배경 그림에는 식판 위의 반찬들이 그려져 있었지요. 아! 이런 귀여운 친구들 같으니. 학교에서 급식이란 그 날 하루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면서 하루를 기대하고 또 기다리게 하는 것이지요. 깔깔대고 웃다가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모든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니 이른바 ‘우수’ 작품만 선정해 전시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개수로 보았을 때 수행평가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의 작품을 붙여놓은 것이지요.


  저도 ‘역사 속 한 장면’이라는 수행평가를 했습니다. 학생들의 적성에 따라 글로 써도 되고, 그림으로 그려도 되는 수행평가였습니다. 수행평가 시간 내내 자다가 시간 내에 다 못 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결시 학생들을 별도로 수행평가를 하였는데 이 학생들도 불렀습니다. 특별한 사유 없이 늦게 내니까 이미 감점으로 시작하지만 제출을 안 하면 0점이니 겨우 설득하여 학생들을 앉혀놓았습니다. 학생들을 겨우 설득하였더니 색연필 한 가지를 잡아 무언가를 쓱쓱 빠르게 그립니다. 그리고 제일 빨리 제출하고 갑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제법 주제가 있는 것을 그렸네요.


  학생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제게 너무 낯설었지만 평가하기에는 한꺼번에 붙여놓고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아 저도 학생 작품을 붙였습니다. 역시 붙여놓고 평가를 하니 훨씬 수월합니다. 다음날 학생들이 벽을 지나가며 서로의 작품을 보고 킥킥대고 웃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합니다. 저도 붙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에 학생 몇몇이 찾아왔습니다. 늦게 제출한 바로 그 학생들입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우리 건 왜 안 붙였어요?”라고 묻습니다. “너희들 제출 기간 내에 했니?” “아니요.” “그럼 내가 평가하려고 아직 안 붙였을 것 같은데. 평가 다 하면 붙일게.” “네.”


  다음날 모두의 ‘역사 속 한 장면’이 벽에 붙었습니다. 그 학생들도 쉬는 시간에 벽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 잘 했죠?” “응. 잘했어. 열심히 그렸구나!” 저는 씨익 미소를 지었습니다. 학생들은 더 크게 씨익 미소를 짓습니다. 서로 칭찬도 하구요.


  저의 순발력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사실 학생들의 작품을 붙이지 않은 것은 평가를 하느라 좀 늦은 것이 맞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붙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들 채색을 예쁘게 하였는데 한 가지 색으로 스케치만 한 그림을 붙여놓으면 그 학생들이 부끄러워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왜 자신들의 작품은 붙여놓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며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늦게 제출해서 죄송하다며 수줍게 웃고 가고는, 다음 날 자신들의 작품이 벽에 붙은 것을 보고 몹시 신이 났습니다.


  속으로 많이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요. 우리는 대체로 한 가지 잣대로 무언가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겨서 가장 못한 것은 그 학생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노력이나 그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결과물을 보고 그 학생의 노력 여부를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에 대한 순위는 큰 변동이 없습니다. 상위권 학생들이 언제나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니 처음에 인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 가치가 없는 것이 되니 점차 노력을 하지 않게 되지요. 아이들의 노력을, 아이들의 최선을 너무 함부로 평가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위 5% 이내에는 들어야지 무언가를 잘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과목에서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하는지에만 관심을 둡니다. 꼭 다른 나라의 예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상위 30%에 들어가면 영재라고 한다네요. 그러면 좋아하는 한 가지 과목 정도는 노력하면 영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영재라고 생각한다면 그 분야에 대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요? 수포자와 영포자 같은 단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을 좋아하니?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다닐 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잘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문과 계열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할 때 제일 재미있었는데 아무도 제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극반 활동이 학업에 방해가 되니 그만두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동아리 활동도 문과 계열의 동아리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연극반과 방송반 활동을 했지만 고등학교에 가서는 독서 토론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연기를 할 때만큼 희열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래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게 정시로 가, 나, 다군 모두 합격을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학을 하려면 가군의 학교를 가야 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나군의 학교를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나군의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입학하고 딱 한 달만에 후회를 시작했고, 대학 시절 내내 방황했습니다. 역사교육과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 대학을 입학할 때까지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역사 공부를 좋아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직업으로 가질 만큼 좋아하느냐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늘 던졌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질문도 실은 역사를 가르치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던지게 되었습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그 질문을 찾지 못해 대학 시절 내내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수년간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묻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잘하는 것만 선택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서요. 그러나 학생들은 제게 되묻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학과와 관련된 동아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교수님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 없을 것이라고요. 실제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학생들의 눈빛이 얼마나 다른지 아나요? 그것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그 반짝이는 눈빛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요. 교수들도 사람이어서 매력적인 사람에게 끌리게 되지요.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지 경험적으로 알기도 하고요. 많은 학생들을 보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보니 타인의 평가가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태도, 나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작품은 아름답다


  혁신학교를 지나 연구학교에 왔습니다. 작품 전시를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항상 우수 작품만 전시합니다. 제가 모든 작품을 전시하자고 하니 그것은 모범이 되지 않는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 있어 그러니 모든 작품을 전시해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도 나름 10년 차였으니 긴가민가 하면서도 선배들이 마지못해 승낙하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우수 작품 전시에는 모든 학생이 관심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작품을 전시하면 모든 학생이 관심을 가지지요. 생각보다 서로 놀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많아집니다. "너 왜 이거 그렸어?" "난 이렇게 생각했거든."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가고, 학습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집니다. 선배들의 칭찬을 듣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저를 뿌듯하게 하지 않습니다.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관심, 서로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토론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이 게시되어 작품을 만든 모든 학생들이 잠깐이라도 기쁘기를, 조금 더 자존감이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작품이 아름답네요. 대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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