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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Feb 07. 2020

그래도 가야 할 길

때때로 길을 잃어버리다.


  “선생님, 여기 한 명의 재수생과 두 명의 대학생이 왔어요.”


  졸업을 앞둔 세 명의 학생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성인이 된다는 기쁨과 불안이 한 데 엉킨 눈동자는 조금 떨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재수생인데?”

  “누구겠어요?”


  처음 말을 꺼낸 학생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참 예쁜 학생이었답니다. 수업 시간에는 눈을 반짝이며 집중을 하고, 학급 회장을 할 때에는 친구들을 잘 다독여가며 학급을 이끌어 가는 리더십도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을 제일 많이 도와주고, 잘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 준 학생이라 늘 고맙고, 애틋한, 때때로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은 대입 미술 실기 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해서 상처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제 미술을 하지 않고 다른 과를 목표로 재수를 할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미대에 친구들이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약간은 이해를 했습니다. 미대 친구가 입시 준비하면서 실기가 꼬여서 너무 힘들었었다는 말을 종종 했었거든요. 대학 1, 2학년 때는 자존감도 낮아지고, 많이 침울했던 친구는 조금씩 자신의 미술 세계를 찾아갔답니다. 저는 이 친구의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따뜻한 색감을 가지고 있고, 위로가 되는 그림들을 많이 그리거든요. 어쩌면 인생의 상처들이 좋은 예술 작품으로 드러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늘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때때로 멋진 작품이 찾아오기도 하나 봅니다.


  저는 학생을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그래도 너의 길을 가렴


  “그래도 너의 길을 가. 우리 인생이 참 긴데 한두 번 실패한다고 해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돼. 내가 미술을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 하지만 나는 네 그림을 참 좋아해. 너는 그림을 잘 그려. 미술 실기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 너의 길을 가렴.”


  저는 이 학생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미술에 문외한이니 기술적인 부분이나 예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이 학생의 그림도 따듯해서 좋았답니다. 수행평가하면서 학생의 여러 작품을 접하기도 했고, 때때로 교내에 전시된 학생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이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모르지만 학생은 그림을 그려야만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계속 그리라고 했지요.


  고등학생 때에는 대학 입시에서의 실패가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라는 생각이 들지만 인생은 참 길고, 대학 입시는 그 긴 삶에서 아주 잠깐의 과정입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해도 우리는 계속 자신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다시 도전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길로도 내가 갈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지요. 지나보지 않았으니 물론 아주 힘든 시간이겠지만 힘든 시간을 지나면 한 단계 성장하는 그 시간도 소중한 추억이 됩니다.



헛된 시간은 없다.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언제나 승승장구하며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도 부상도 입고, 슬럼프도 오고, 때때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기 때문에, 힘든 훈련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번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도 언제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고,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 자리에 가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실패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 선수도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많이 넘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넘어졌다고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져도 계속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배우들도 연극판에서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며 열정 하나로 그때를 겪어냈다는 말을 들으면 꿈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꿈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대학로 근처에 있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는데 연극을 하는 청년들이 꿈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조금 더 버텨보라는 조언이 1년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작은 극단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배우들에게 조금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배우를 그만둔 이 청년들은 처음부터 연극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까요? 꿈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헛된 시간이었을까요?


  저는 감히 그 시간들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라는 것도 무언가를 시도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을 테니까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아부었던 그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고, 다른 일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뭐든 배우면 다 도움이 되거든요. 배우를 했던 그 친구들은 무대에 섰던 경험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면접을 보거나 할 때에 아마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본 그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해봐야지요!



이루어지지 않을 꿈


  저도 그랬습니다. 제 꿈은 무엇일까요? 제 꿈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허무맹랑해서 아이들도 웃고 맙니다. 제 꿈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지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어린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자 일단 교사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제게는 사교육의 길을 가는 것이 대학 졸업 당시에는 가장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명한 학원 강사 선생님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러나 저는 학교에 왔습니다. 어린이들의 삶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같이 생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선생님이 TV에 자주 나오고, 저의 통장 잔고를 보면 가끔 후회도 돼요.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아마 저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청춘은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교직 생활은 조금도 로맨틱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하게 수업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수업 준비만으로도 버거운데 학교 행정 업무도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초임 교사들이나 기간제 교사들에게 일을 몰아주는 나쁜 경향이 있는데 저는 초임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고, 컴퓨터를 잘한다는 이유로 심지어 두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학교에 살다시피 하고, 친구들의 문자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야 했지요.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기간제 교사입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여교사이기 때문에, 젊은 교사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인권 침해의 현장에서 부당함을 참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거대한 권력들과 싸우고, 또 싸우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때때로 다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해에는 한 해에 사직서를 세 번이나 냈습니다. 이토록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나의 10년이 어쩌면 헛된 것은 아니었을까?



느리게 가도 괜찮아


  인생의 좋은 선배들이 전하는 말은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대학원 지도 교수님은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큰 획을 그으신 선생님입니다. 제가 잠시 쉬게 된 때에 선생님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셨답니다.


  “나도 자리를 잡기 전에 10년은 매우 불안정했어요. 그러나 그 시간이 내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고난 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참담할 때가 많습니다. 공감 능력도 없고, 본이 되지 않는 일들도 많이 하고, 그런 것을 넘어 권력이나 부를 갖기 위해 부정부패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그러나 때때로 실패하며 한 단계, 한 단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소처럼 느리게, 그러나 부지런히 걸어온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그리고 큰 위로를 주지요. 저는 소처럼 걷고 싶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서 잠시 쉬고 있나요? 혹은 넘어졌나요? 괜찮아요. 잠시 쉬어도,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길을 가세요.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그 길은 넓은 대로처럼 보여도 재미없고 뻔한 길일지도, 혹은 아예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어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조금 고되고, 조금 힘들어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세요.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 길에서 본 풍경과 추억이 중요한 것이지요. 넓은 길, 큰길이 아니라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지 못해도, 나의 친구들은 이미 도착한 것 같은데 당신만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 길을 향해 가세요.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고, 당신의 길이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나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됩니다. 반드시 그것은 도움이 됩니다.


  아, 제가 좋아하던 그 학생은 결국 미대생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에 가고 싶은 학교에 진학을 했구요, 저는 1년 동안 재수한 경험이 어쩌면 그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세계를 그 학생에게 열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은 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결국은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가야 할 길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가세요. 사회가 말하는 좋은 직업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성취감이나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당신이 행복해야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어도 괜찮아요. 넘어지면 그 김에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요. 빠르게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그 길에 와 있을 거예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이유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자신의 페이스를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나의 속도로,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면 됩니다.


  많은 장애물이 있어도 꿈을 보고 걸어가는 당신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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