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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Feb 24. 2020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그 날짜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빨개지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어른들의 욕심은 많은 아이들을, 끝까지 어른을 믿고, 어른의 말을 들었던 아이들을 바닷속에서 결국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시커먼 진도 앞바다가 연일 뉴스에 나왔습니다. 어른들은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에어포켓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거짓된 희망을 주었습니다. 진실을 감추려고만 했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고, 바다에 가라앉았던 큰 배는, 끌어올려져 떠올랐습니다. 너무 늦게서야 떠올랐습니다. 녹슬고 부서진 큰 배 안에서는 거짓말과 탐욕만큼이나 많은 진흙이 나왔고, 배의 모습은 참혹했습니다.


  저는 그 날의 일들이 시간대별로 기억이 납니다. 교무실에서 처음 제가 뉴스를 발견했고, 우리는 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몇 시간 뒤에 어떤 선생님이 탑승자들이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뉴스를 크게 읽고 있을 때 옆 교무실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어떤 교실에서 우렁찬 박수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도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뉴스가 오보였다는 뉴스가 다시 나왔습니다. 내가 그 시간 동안 기도를 안 해서 아이들이 못 나오면 어쩌나 하고 다시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제발 모두가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기술이 많이 발달되었으니 배를 건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들 대부분이 SNS의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걸었습니다. 어른들도 모두 노란 리본을 걸었습니다. 노란 리본은 기다림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보여준 선원들의 용기를 세월호에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전원 구조되었는데 304명의 승객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로 그 슬픔을 위로하겠습니까. 가족들을, 친구들을, 선생님들을…. 저도 이렇게나 아프고, 슬프고, 목이 메어오는데 가족들의 슬픔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 그 친구들의 아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것뿐이었지요. 어떤 이들은 울 수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더 큰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분들을 생각하니 감히 울 수도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는 다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그토록 기대하던 수학여행은 취소되었습니다. 아마도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취소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학교도 학부모님들께 수학여행에 대한 의견을 묻는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읽는 것도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대개의 경우, 학부모님들은 가정통신문 란에 찬성, 반대를 체크만 하여 보내주십니다. 부모님들은 바쁘시거든요. 그런데 그 가정통신문만은 많은 학부모님들이 수학여행을 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사유를 쓰셨습니다. 사유를 쓰는 란이 없었는데 많은 부모님들께서 그 이유를 가정통신문의 여백에 쓰셨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이 아직도 아파하고 계실 텐데 우리 아이만 즐거운 추억을 만들라고 수학여행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셨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모든 것에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어른들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정부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한 것도 어른들이고, 어른들 말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어른들이고, 안전 훈련 같은 것을 학교에서 가르쳐달라고 말해보지 않은 것도 어른들이었습니다.


  학교에 있는 우리들은 모두가 죄인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솔하고 가는 수학여행은, 수련회는 안전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운이 좋아서 무탈히 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친 적이 있을까. 모든 선생님들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이전과는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지 마. 어른들 말 꼭 안 들어도 돼.”



함께 기억해요


  아이들은 모두 SNS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걸었습니다. 가방에도, 필통에도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아주 오랫동안 리본을 달았습니다. 아니, 지금도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 한 분들을 기다립니다. 기억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9년 4월 16일입니다. 5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어떤 국회의원과 그 시절 국회의원을 했던 어떤 자가 유가족들을 비난하였습니다. 너무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나 하늘이 벌을 내렸으면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의 벌로 그 사람들을 어떻게 크게 아프게 하겠습니까. 책임을 졌어야 할 사람들이 이젠 잊으라고, 지겹다고 하는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니 우리 어른들이 또 잘못을 했습니다. 실은 훨씬 더 나쁘고 모욕적인 말들인데 여기에 적지 않았습니다. 그 글을 읽은 누구라도 마음이 너무 다치게 될 말들이라 생략합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들은 미안하다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 슬퍼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냥 옆에 있는 것, 그냥 들어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나쁜 것들이 다 모여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반성해야만 합니다. 어른들의 책무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일 텐데 우리는 그것을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반성의 처음은 미안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래서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끝을 맺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친구들 중에는 누군가의 형제자매이거나 또 친구이거나 동아리 선후배이거나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슬픔을 감히 헤아리거나 위로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함께 기억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세상을 함께 바꾸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미 그렇게 했어야 했던 일들을 하지 못해서, 그래서 더욱 미안합니다.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주세요.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그리고 친구와의 좋은 기억들도 나누어주세요. 함께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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