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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Feb 10. 2020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 때문에...


  때때로 학교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심장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대체 어린이들은 얼마나 많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고, 또 얼마나 많은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요.


  제일 마음이 아플 때는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내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내가 놀림을 당할 만큼 작았기 때문에, 내가 나쁜 친구와 놀았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전문상담을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상담을 진행해도 대개는 이 학생들이 치유가 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립니다. 지속적인 학대와 폭력 속에 있었던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자책을 하는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어느 날, 학생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교무실로 뛰어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고, 지금 이야기 안 하면 죽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학생은 어릴 때, 폭력에 꽤 오래 노출되어 있었고, 이후로 슬픔과 우울감뿐만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 등 여러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아 너무 힘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업 시간에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다가 그 상처가 크게 건드려진 것 같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일단 제게 달려온 것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가해자가 정말 나빴고, 그로 인해 그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오랫동안 아팠겠구나 하고 같이 아파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다만 나는 전문적인 상담을 하기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으니 너를 위해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하여 상담할 수 있는 곳을 연결해주었습니다.


  아이가 부끄러움 속에 있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는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남의 아픔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언론의 기사들이 너무 폭력적인 것은 아닌가 서글퍼졌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상담을 계속 받았지만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저는 기도하며 아이에게 잘 살고 있다고 도닥이는 일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래도 돼...


  신체에 가하는 폭력을 당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그 말에 평생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고3 학생들의 추천서를 쓰기 위해 상담을 하면서 때때로 진학이나 진로 상담이 아니라 그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큰 사건이나 상처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진학 상담을 하다가 무언가 막힌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학생에게 요즘 잘 지내냐고 물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학생의 상처가 돌봄을 많이 받지 못한 것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부모님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가족들이 할머니께 아기를 맡기고 외출을 한 때에 하필 할머니가 쓰러지시면서 다치셨고, 이후로 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해져서 부모님께서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느라 아이를 살뜰히 돌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그 미안한 마음을 다정히 표현하지 못하고 할머니가 다치신 것이 너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돌봄을 받지 못해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과 자신 때문에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미안함, 그리고 내가 할머니를 다치게 한 사람이니 돌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외롭게 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합리화시키면서 자신의 상처를 감추었지요. '할머니는 나 때문에 편찮으신 거니까 나는 외로워도 돼.'하고 말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쓰러지시면서 다친 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돌봄을 받았어야 해. 너는 아직 어렸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다치신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할머니가 쓰러지실 줄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부모님이 아기를 누군가에게 맡겼는데 그분이 다쳤다면 그것은 부모님이나 아기를 맡아 준 사람의 잘못이 있을 수는 있어도 아기는 잘못이 없지 않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으로 깊이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때때로 힘들기도 하시고, 어쩌면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할머니만 돌보는 것이 미안해서 너 때문에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이가 그것을 이해해 줄 거라고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그 말의 속뜻을, 아버지의 미안함이 담긴 행간의 의미를 알려면 아이도 아버지가 되어야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키가 엄청 컸다고 해서 마음도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키가 어른보다 커도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이 교실에서 사탕 하나를 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저요!”를 외치는지 아시나요? 아직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쉽게 마음을 다칩니다.


  부모님의 이별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싸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아이를 봐서 참는다거나 아이는 당신이 키우라거나... 이런 말을 들은 아이는 자기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릴수록 더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은 부모님의 문제인데 아이가 핑계가 되거나 짐이 되는 것 같은 거친 표현들 속에서 아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게 됩니다. 결혼 생활이 이혼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그 어떤 일들보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 과정을 다 알아야 하거나 부모의 감정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아이들은 부모님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나 감정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아이가 감당하기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도 함께 견뎌야 하는 과정이지만 그것은 부모님의 일이고, 부모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이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이의 잘못은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나요? '문제아' 때문에 어른들이 힘든 걸까요? 아이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아이들 마음속 문제는 어른들에게서 올 때가 더 많습니다. 어른들의 문제가 작은 아이의 마음으로 들어와서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공감을 잘 하고, 타인의 문제를 내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청소년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지 않아야 하는 문제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혹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아픈데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상처를 더욱 키워가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과 청소년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너무 큰 아픔이라면,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면 꼭 모두에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나 도움을 줄 수 있은 사람에게만 말하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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