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우 Jan 18. 2020

현대의 심청이들에게

  산타의 선물


  여덟 살 때의 일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올해는 많이 울지 않았고, 동생도 잘 돌보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닌 것 같으니 병원놀이나 소꿉놀이 세트를 선물로 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어 11시가 넘어갈 때까지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뜨면서 겨우겨우 눈을 뜨고 있다가 결국은 잠이 든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동생의 머리맡에는 큰 선물이, 제 머리맡에는 책으로 보이는 선물꾸러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약간 실망했지만 책도 좋아했기 때문에 신데렐라처럼 재미있는 동화책이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선물을 풀었는데 한 권은 효녀 심청, 한 권은 사랑의 학교였습니다. 저는 사랑의 학교를 백 번도 넘게 읽었습니다. 무척 재미있었지요. 그리고 효녀 심청을 보고는 이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아빠가 주신 매우 의도적인 선물이 틀림없지요.


심청은 효녀인가?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의아했습니다. 심청이는 효녀일까?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해도 딸이랑 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딸이 가장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도요. 그런데 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명분으로 뱃사람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갑니다. 제물이 되어 죽으러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의아했던 것은 청이가 왕비가 되고 난 후에 아버지를 찾기 위해 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청이는 남편인 임금에게 부탁하여 눈을 뜨지 못 한 노인을 위한 잔치를 열고 아버지를 찾습니다. 청이는 공양미 삼백 석을 내어도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청이는 신실한 불심으로 배를 타러 간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어릴 때에는 심청이가 효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그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1학년 말부터 저희 집에는 큰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휴학을 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복학한 이후로도 쉬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청이 만큼 힘든 것은 아니었겠지만 청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청이는 경제적으로 더 이상 아버지를 부양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많이 지쳐있었겠지요. 부디 아버지가 배고프지 않기만을 바라며 배를 타는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청이는,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현대의 심청이들


  교직에 있으며 수많은 심청이들을 만났습니다. 소녀뿐만 아니라 소년들도 많지요.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장학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이들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끊임없이 해서 돈을 버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혹은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돌보거나 나이가 많으시고 편찮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만 부모님의 마음의 짐을 대신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만납니다. 부모님 마음의 상처나 부모님이 졌어야 할 경제적인 책임을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는 10대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픕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른들만큼 마음이 크지 않았는데 그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버겁고 힘이 듭니다. 큰 짐에 짓눌려 마음이 크게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그 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청이처럼 영원한 쉼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졸업한 아이가 너무 힘들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이의 사정이 대학시절 결국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친구를 떠오르게 했고, 저는 아이의 재수학원 앞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의 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의 상처가 컸고, 아이에게 모든 일을 언제나 털어놓았으며 아이는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혹은 어머니를 위로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그 짐은 네가 질 수 있는 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짐은 어머니가 져야 하고, 어른의 일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한다구요. 아이들은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어하는 부모님보다 자기가 더 강하다고 믿지요. 아이들은 아직 자기 마음의 크기나 자기가 지고 있는 짐의 크기를 다 알지 못하거든요. 부모님은 그 짐을 정말로 다 전가하려고 아이들에게 힘든 일을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부끄러운데 혼자만 끙끙 앓고 있자니 너무 힘들어 자녀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자의 외도, 이혼에 대한 상담도 아이들에게 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실은 아이도 그 사건의 당사자 중의 한 명이고, 자신 못지않게 상처를 받게 되는데 그것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에게 자신의 짐을, 상처를 다 전가해버리지요.


삶을 버리지 말고, 짐을 버리기


  저도 청이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집안일과 부모님의 식당일을 많이 도우며 컸고, 성인이 되어서는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지게 되었지요. 어릴 때부터 가계에 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컸고, 그것은 제게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너무 힘든 그때에 고맙게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삶을 버리지 말고, 짐을 버리라구요. 무거운 짐을 다 내게 맡기라는 신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힘들 때, 서로 잠깐 짐을 함께 들어줄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짐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오래 동행할 수가 있지요. 안 그러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과 나귀의 이야기처럼 더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답니다.


  부모님의 짐을 지지 마세요. 아직은 청소년기에 들 수 있는 짐만 들고, 그 고민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요. 청이 아버지는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간 그 날부터 아마 마음 편히 잠도 못 잤을 테니까요. 우리가 잘 자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 가장 큰 효도랍니다.


  아, 그래서 졸업생 제자에게 제가 해 준 조언은 다음부터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한 것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잘못한 이야기는 나한테 하지 마. 나는 아직 어리고 또 나한테는 우리 아빠잖아. 이모랑 하는 게 좋겠어. 이모는 엄마랑 나이도 비슷하고 또 엄마를 사랑하니까 더 잘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픈 부모님께 모진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어른들의 짐을 지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아요. 결국 부모님은 여러분이 행복할 때 행복해질 거예요. 부모님이 져야 할 마음의 짐은 내려놓고 여러분은 조금 더 행복해져야 해요.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면 정부와 우리 주변의 어른들이 여러분의 짐을 나누어서 질 거예요. 여러분은 즐겁게 놀고, 꿈을 꾸며 자라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이전 12화 갈비뼈보다 더 아픈 곳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