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기사를 접하였습니다. 한 여고에서 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라는 글을 만들어 붙인 것입니다.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하였지만 건물을 보자마자 어느 학교인지 알았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처음 교단에 섰던 학교에서 대학 동기인 다른 과 쌤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누가 먼저 보고 알렸는지 모릅니다. 기사를 보자마자 우리는 만났습니다. 맞지? 우리가 일했던 학교? 이게 무슨 일이냐고. 어떻게 그런 일이. 진짜 우리가 있던 학교에서? 그것도 21세기에?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생기면 교사들은 의견이 나뉩니다. 학생의 편에 서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편에 선 선생님, 그리고 학교의 편에 선 선생님. 친한 선생님이 그랬을 리 없다고 믿는 선생님들은 그래도 이해는 되는데 학교의 편에 선 선생님들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언뜻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듯 보이지만 법적인 용어로 자연인인 사람의 편이 아니라 법인인 학교의 편을 든다는 것이 이 상황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학교 명예가 떨어지는데, 남부끄럽게 왜 다른 데 알리냐고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교사들의 직업윤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곤 합니다. 교사는 왜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하지 않을까. 교육에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왜 학교에 건의하지 않고, 모두에게 알려야만 했을까요? 먼저 학교에 알리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을까요? 학생들은 나름의 방법대로 학교에 알렸으나 학교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알리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졸업생들이 시작한 일에 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재학생이 시작하는 것은 아마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불려 다녀야 하는지, 저도 여고시절에 다른 반 학생이 얼마나 많은 관심 속에 학교를 다녔는지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립학교에서 더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들에 교육청이 잘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청이 사건을 인지하면 바로 감사가 나옵니다. 학생, 교사를 상대로 자세히 조사를 합니다. 공립학교에서는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교육청이 합니다. 사립학교는 교육청이 징계를 '권고'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은 대체로 사립학교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사립학교의 임용 및 상벌에 대한 권한은 모두 재단의 이사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들은 교육청 권고가 나오면 대체로 따르기는 하지만 징계 수위를 낮추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사립학교들은 교육청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습니다. 피해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일이 있기 전에 당시 근무하던 학교로 장학관이 와서 성폭력 예방 연수를 하였습니다. 어떤 학교의 예를 들었습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한 선생님에 대해 학교가 문제를 인지하자마자 바로 교육청에 보고하였고, 교육청이 바로 감사를 실시하여 빠르게 잘 해결한 케이스로 말하였습니다. 교육청에 빨리 보고하라는 의미였지만 저는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학교는 WITH YOU로 알려진 학교와 같은 구에 있는 학교입니다. 해당 교사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중학교에서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옮겨갔습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여자고등학교로 옮기는 것이 처벌이었습니다. 여중을 다니던 학생 중 많은 학생들이 그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구요. 저는 이 사건의 해결이 너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장학관은 잘 해결한 케이스라고 말했습니다. 학교와 교육청이 면피를 할 수 있으면 그것은 잘 해결된 것입니다. 학생들의 현재의 삶과 그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까요? 교육기관에서 그것을 생각해주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안심하고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요?
미안했습니다. 그런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 했구나. 저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있던 쌤은 저보다 그 학교에 더 오래 있었는데 몇 명은 의심스럽기는 하였으나 몇 명은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희롱하거나 추행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으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는지 더 살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참담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폭력 문제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학교 내 성폭력은 결국 권력의 문제입니다. 교사가 자신의 지위를 권력으로 생각하고, 학생이 약자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폭력 또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에 신고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체로 남교사가 여학생에게 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성의 교사가 동성의 학생에게, 그리고 여교사가 남학생에게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신고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또 다른 편견이 남학생들이 신고하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공부해야 할 공간에서 학생들은 보호자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단 초, 중, 고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요즘 대학에 가보면 건물마다 성폭력 교수에 대한 징계를 행하라는 대자보와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교사와 교수들이 진학이나 진로와 관련하여 강한 권력을 행사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은 약자가 됩니다. 스포츠계와 예술계 쪽은 더 심합니다. 스승을 배신한다는 것은 곧 내가 좋아하는 일로부터 완전히 이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대표 선수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건들, 연극계와 문학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이 제자들에게 가했던 성폭력들이 연이어 기사로 나왔습니다. 어떤 피해자들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미투와 위드유 운동이 어떤 사람들에게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이 좋은 남성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을 비난하는 것 같아 싫다는 의견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미투와 위드유는, 성폭력에 대한 고백과 그 고백에 대한 지지이지 모든 남성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학생이나 후배 등 권력을 이용해 보호해야 할 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에 대해, 그리고 약자들을 보호할 것에 대해 주장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학교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곳이기에 학생들은 성폭력으로부터 더욱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이 일어난 학교들에서 일부 교사는 퇴직하였지만 일부 교사는 여전히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퇴직하지 않은 쪽이 더 많지요. 성폭력 가해자인 교사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교사가 직장을 잃으면 그 가족들은 어떡하냐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범죄자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요. 범죄를 저지르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범죄를 저지르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언행에 신중했어야 합니다. 그 가족들을 엮어서 비난하는 일은 절대로 생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인 교사의 가족들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며 재판이나 처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피해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육 기관에서는 학생 보호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는 법이 잘 들어오지 못합니다. 교육 기관이니 교육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일들을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좀 어려운 부분이 있고, 교육이 가져야 하는 일부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에 한해서는 법적인 해결이 먼저 들어와야 합니다.
학교 폭력을 교칙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마다 교칙이 다르고, 학교의 교칙이라는 것은 가장 강력한 것이 퇴학입니다. 의무 교육 기간 중에는 퇴학도 되지 않습니다. 강제 전학이 가장 강한 처벌입니다. 만약 학생의 신체와 생명에 심각하게 해를 입힌 학생에 대해 학생이기 때문에 교칙으로 해결한다고 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겨우 전학을 가거나 퇴학을 당하고 사건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원회에서 때때로 큰 부와 권력을 가진 가해 학생의 부모가 사건을 무마시키기도 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진학을 위해 또는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까 봐 학교에서 사건을 축소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해 학생에게 퇴학 명령이 떨어졌지만 부모님의 재력이 큰 경우에 학생은 보란 듯이 유학을 가기도 합니다. 피해 학생에게는 그 억울함이 신체적 아픔만큼이나 또 다른 아픔이 됩니다.
가해자가 법적인 처벌을 받으면 피해 학생이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억울함이 조금 상쇄되기는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강한 법적 처벌이 있으면 폭력은 대체로 줄어듭니다. 가해 학생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대해 어디까지 처벌을 받게 되는지 대체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은 폭력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법적인 책임을 지고, 이후에 사과를 하든 학교 교칙에 의해 다른 처벌을 하든 해야 합니다.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학교 폭력도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교사에 의한 폭력, 그것도 성폭력이라면 당연히 강력한 법적인 제재가 있어야 합니다. 재판에 의한 형사처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교육 기관에서 일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그리고 학교를 믿고 학생들을 보내는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불안합니까. 학교가 불안한 곳이라면 학습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조금씩 제도와 인식의 개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 임용 방식과 교사들 내의 직업윤리에 관한 부분들이 더 새로워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재와 같은 교사 임용 방식으로는 공립이든 사립이든 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인성과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대와 사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대의 성희롱 단톡 방에 대한 학교의 처벌이 이해가 되는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동기와 선후배, 심지어 교수에 대해 성희롱을 일삼던 그 학생들이 교사가 되면 인격이 바뀌면서 학생들을 향해서는 성희롱을 하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이 정말 초등 교사가 되어도 될까요?
이 글의 마무리를 짓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해야 할까... 그리고 n번방 사건의 기사가 났습니다. 참으로 참담한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저런 범죄자들에 대해 우리나라 법은 왜 그토록 관대한가 하는 생각을 할 무렵에 피해자의 잘못이 먼저라고 지적하는 남성 권위자들과 가해자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국회의원, 법무부의 높은 사람들의 말이 기사화되어 떠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오.
그 어떤 말로도 성범죄의 가해자를 두둔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말로도 성범죄의 피해자를 낙인찍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모든 가해자들의 죄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를, 그리고 강력한 처벌을 하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학교 성폭력의 피해 학생들을 끝까지 지킬 것이고, 지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