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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Sep 07. 2020

끊임없이 배우는 이유

(주)이니플래닝에서 강의를 하며...

2년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로스쿨을 준비한다며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학교에 있으면서 학교 안 아이들보다 학교 밖 아이들이 더 위험 속에 있음을 경험하고, 그런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목구멍은 포도청이라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선배가 기업에서 세계사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가끔 옷을 사던 브랜드의 의류 회사였다. 의류 회사에서 세계사를 왜?


국민대학교 웹진 김경희 대표 인터뷰 내용 중에서


대표님은 사원들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며 매년 한 가지씩 공부를 한다고 하셨다. 작년엔 한자를 공부해서 직원들이 자격증을 땄고, 올해는 세계사를 공부하려 하신다고.


일단 “yes”라고 했지만 막막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 9-11시까지 120분을 역사 수업을 하면 안 졸릴까? 그리고 그때까지 나의 수업 경험은 오로지 국사였는데...


LEET 준비보다 세계사 강의를 더 많이 준비했던 것 같다. 첫 강의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는지 대표님은 그날 페이를 두 배로 올려주셨다. 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어쩐지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 같았고 나도 힘들었다. 대표님이 면담을 요청하셨다.


대표님은 회사가 직원 복지의 일부분으로 수업을 하는 의미, 수업 시간에 일을 할 때의 생산량 같은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조금 더 재미있게, 조금 더 사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해달라는 말을 직접적인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저렇게 진심을 담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무척 감탄을 하였다. 동시에 내 수업에 대한 반성도.


그 나라를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그 나라 사람들과 사업을 하거나 그 나라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수능에 들어가야 하는, 그래서 외워야 하는 내용들, 교사들이라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내용을 과감히 생략했다.


종교와 언어, 음식, 건축 양식, 미술, 음악 같은 것들이 남았다. 어디서부터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지옥철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역삼에 내려 월요일에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재미가 있어야 했고, 유익해야 했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면 좋겠고, 패션에 반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나중에는 한국사 특강도 했는데 강의를 듣고 다 같이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오시고는 단체 사진도 보내주셨다.


복식사와 하이힐의 역사를 할 때에는 다들 숨을 죽이고 들으시는 것 같았다. 나도 기업 강의를 안 나갔으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배웠다. 지금도 학생들은 이 부분을 무척 좋아한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듣기 어려운 수업이기도 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많은 것 같다.


마지막 강의 때 큰 꽃다발과 함께 정성스럽게 쓴 편지들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은 너무 재미없었는데 재미있게 1년을 보냈다거나 여행 갈 때 도움이 되었다거나 하는 내용들과 함께 강의하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신 디자이너님도 계셨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참 감사한 1년을 보냈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대상에 따라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한 덕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수업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았으므로!


패션은 인문학에 더 가깝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김경희 대표의 철학은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외려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더 많은 문화적 자극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끔 리안 뉴욕의 옷을 산다(편하면서 너무 캐주얼하지 않은 옷을 골라야 하는 교사들이 선호하는 몇몇 브랜드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옷을 보며 이 옷에는 어떤 철학이 담겼을까, 이니플래닝 식구들은 지금은 무엇을 공부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 지금도 무언가를 배우고 계시겠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옷에도, 음식에도, 수업에도 우리의 배움이 고스란히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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