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니플래닝에서 강의를 하며...
2년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로스쿨을 준비한다며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학교에 있으면서 학교 안 아이들보다 학교 밖 아이들이 더 위험 속에 있음을 경험하고, 그런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목구멍은 포도청이라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선배가 기업에서 세계사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가끔 옷을 사던 브랜드의 의류 회사였다. 의류 회사에서 세계사를 왜?
대표님은 사원들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며 매년 한 가지씩 공부를 한다고 하셨다. 작년엔 한자를 공부해서 직원들이 자격증을 땄고, 올해는 세계사를 공부하려 하신다고.
일단 “yes”라고 했지만 막막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 9-11시까지 120분을 역사 수업을 하면 안 졸릴까? 그리고 그때까지 나의 수업 경험은 오로지 국사였는데...
LEET 준비보다 세계사 강의를 더 많이 준비했던 것 같다. 첫 강의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는지 대표님은 그날 페이를 두 배로 올려주셨다. 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어쩐지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 같았고 나도 힘들었다. 대표님이 면담을 요청하셨다.
대표님은 회사가 직원 복지의 일부분으로 수업을 하는 의미, 수업 시간에 일을 할 때의 생산량 같은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조금 더 재미있게, 조금 더 사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해달라는 말을 직접적인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저렇게 진심을 담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무척 감탄을 하였다. 동시에 내 수업에 대한 반성도.
그 나라를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그 나라 사람들과 사업을 하거나 그 나라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수능에 들어가야 하는, 그래서 외워야 하는 내용들, 교사들이라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내용을 과감히 생략했다.
종교와 언어, 음식, 건축 양식, 미술, 음악 같은 것들이 남았다. 어디서부터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지옥철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역삼에 내려 월요일에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재미가 있어야 했고, 유익해야 했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면 좋겠고, 패션에 반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나중에는 한국사 특강도 했는데 강의를 듣고 다 같이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오시고는 단체 사진도 보내주셨다.
복식사와 하이힐의 역사를 할 때에는 다들 숨을 죽이고 들으시는 것 같았다. 나도 기업 강의를 안 나갔으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배웠다. 지금도 학생들은 이 부분을 무척 좋아한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듣기 어려운 수업이기도 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많은 것 같다.
마지막 강의 때 큰 꽃다발과 함께 정성스럽게 쓴 편지들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은 너무 재미없었는데 재미있게 1년을 보냈다거나 여행 갈 때 도움이 되었다거나 하는 내용들과 함께 강의하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신 디자이너님도 계셨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참 감사한 1년을 보냈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대상에 따라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한 덕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수업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았으므로!
패션은 인문학에 더 가깝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김경희 대표의 철학은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외려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더 많은 문화적 자극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끔 리안 뉴욕의 옷을 산다(편하면서 너무 캐주얼하지 않은 옷을 골라야 하는 교사들이 선호하는 몇몇 브랜드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옷을 보며 이 옷에는 어떤 철학이 담겼을까, 이니플래닝 식구들은 지금은 무엇을 공부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 지금도 무언가를 배우고 계시겠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옷에도, 음식에도, 수업에도 우리의 배움이 고스란히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