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을 발행하며...
그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만든 맛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할머니의 열무김치를 먹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자신의 장례식에 쓸 김치들을 다 만들어 두고 가셨다. 언제 담그셨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는 장례식 때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열무김치의 맛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엄마와 할머니의 열무김치는 맛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열무김치에서는 이상하게 시골 냄새가 났다. 엄마가 담근 열무김치와 할머니가 담근 열무김치의 양념이 거의 비슷한데 할머니의 열무김치에서만 시골 냄새가 났다. 밭에서 바로 캐서 담가 그런 것일까, 밭일을 하던 손으로 담가 그런 것일까?
엄마의 열무김치를 먹을 수 있지만 할머니의 열무김치가 그립다. 할머니의 열무김치가 그리운 것은 할머니가 그리운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내게 설 명절에 쓸 가래떡을 무거운 무쇠 칼로 썰라고 하지 않는다. 누구도 내게 한 다라이에 가득한 반죽으로 송편을 빚으라고 하지 않는다.
몇 년은 그게 참 편했다.
그래, 떡국 떡은 방앗간에서 다 썰어서 나오는 거지.
송편 사 먹으니까 맛있네.
그런데 문득문득 그 잔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아이고, 내 강아지”하고 내 얼굴에 코를 부비고는 강아지한테도 코를 부비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으러 전화를 걸 데가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열무김치도, 팥칼국수도, 콩국수도,
할머니와 함께 만들던 송편도, 떡국도,
할머니와 함께 구웠던 군고구마도, 조기도,
할머니네 집에 가서 서리했던 수박과 옥수수도,
할머니가 사주던 눈깔사탕도...
이제는 모두 먹을 수가 없어서
하나씩 마음속에서 꺼내어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