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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Sep 16. 2020

교육부는 우리에게 헤드셋 하나 사주지 않았다.

교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더니 책임도 떠넘기는 교육부

 

이번 교육부의 발표를 듣고 자괴감이 들지 않은 교사가 있었을까? 제발 조종례만큼은 실시간 쌍방향으로 해주세요..라는 내용을 언론에 뿌리다니 교육부는 무슨 생각일까?


사실상 거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은 채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온라인 수업은 오롯이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엄청난 업무량 속에서 교사들은 늘 “성장”하려고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위기를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생각하며 아무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뉴스에 나온 학교들은 대체로 “시범학교”이거나 “연구학교”이다. 일반 학교에 비해 연구비가 많이 지원되고 시설이 잘 갖춰진 학교들이다. 그나마도 국공립 학교들은 컴퓨터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만 사립학교들은 교사들에게 제대로 된 노트북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곳도 많다. 나는 2010년에 나온, 그러나 디자인만 보면 2000년에 나온 것보다도 못한 노트북을 쓴다. zoom을 돌리려면 모든 프로그램을 다 꺼야 하는데 파워포인트도 꺼야 한다. 수업이 불가능한 노트북이라는 말이다.


내가 아는 학교들은 모두 조종례를 실시간으로 한다. 심지어 우리 학교는 모든 수업을 zoom을 이용한 실시간 쌍방항 수업으로 한다. 그런데도 유감스럽게 언론에는 일부 학교의 사례가 전부인 것처럼 나왔다.



화상 회의를 통한 수업은 녹화된 수업보다 질이 좋을까?


내 경우에는 온라인 수업을 할 때 오프라인 수업에서보다 진도가 50-60% 정도밖에 못 나간다. 출석 부르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무단 결과를 막기 위해 아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한다. 고2, 고3이 이 정도인데 초중등 어떨지 눈에 선하다.


실시간 화상 수업은 가정의 환경을 완벽히 공개한다. 방의 모습만 보아도 아이들의 경제적 환경이 금방 드러난다. 자기 방이 없는 아이들은 수업이 매우 어려워서 학교 도서관에 나오기도 한다. 부모님 중 한 분이 집에 계시면 학생은 대체로 출결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맞벌이, 한부모, 조손가정, 1인 가정의 학생들은 출결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전화 연락을 못 받으면 그대로 미인정 결과 처리된다. 이것이 나중에 대입에 어떤 영향을 줄지, 혹은 취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모른다.


출석도 출석이지만 대면 수업처럼 한눈에 아이들 반응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해가 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계속하다 보니 진도를 많이 나갈 수가 없다. 물론 나의 염려증 때문이고 다른 교사들은 이보다는 진도를 빨리 나갈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집중력에 관한 것이다. 7시간을 거의 내리 화상 회의나 수업을 하면 당신은 내내 집중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전달력도 전달력이지만 눈도 귀도 너무나 피곤하다. 게다가 캠을 켜놓고 있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부담감이다. 누군가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 하루를 보내야 한다.



교육부는 우리에게 헤드셋 하나 사주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실시간 수업을 하는데 지어진 지 너무 오래된 학교이고 인터넷망이 설치된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한쪽 라인이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교육청에 망 확대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뉴스에는 교육부가 학교의 인터넷망 설치를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고 나오고 있었다.


zoom을 유료로 구매하면 와이파이 환경이 다소 좋지 않아도 연결이 덜 끊긴다는 것을 너무 화가 나서 개인이 유료로 프로그램을 구매한 교사로 인해 알게 되었고 한 달간 유료 사용을 하게 해 주었다. 한 달! 이후로 잘 안 되면 교사 개인이 zoom pro를 쓰든지 휴대폰에서 테더링 하여 인터넷을 잡아야 했다.


마이크를 별도로 쓰지 않으면 소리 전달이 되지 않는다. 교실이 무척 울리기도 하고 우리의 노트북은 매우 형편없으므로... 학교에서 7-8천 원 하는 이어셋을 사줬다. 이것도 딱 한 달 갔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1-2개월 만에 고장 난 이어셋을 버리고 개인 헤드셋이나 이어셋, 에어팟을 샀다. 2-3만 원대 헤드셋만 사줬어도 1년은 갔을 것이다.


교사들은 좋은 수업을 위해 노트북, 태블릿, 에어팟과 에어 펜슬, 마이크나 헤드셋, 웹캠 등을 구매하였다. 어떤 비용도 교육부에서 대주거나 사주지 않았다.


통신비는 3만 원이 처음 한 달만 나왔다. 교사들은 여전히 매시간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전화하고 있고, 테더링을 해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무용 폰이나 통신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자부심 없이 자괴감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직은 다소 독특한 직업군이다. 어떤 면에서는 성직과 비슷하고 그래서 높은 도덕적 책임과 사명감을 강요받고, 또 집단 내에는 기꺼이 그것을 감당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직업군을 선택했을 때 보람을 느끼는 대신 때때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교사는 대체로 학생 시절에 모범적이었던 이들이 선택하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하라면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올해 갑작스럽게 온라인 수업이 결정되었을 때, 개개인의 교사도, 교사 단체도, 교사 노조도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매우 부족한 환경 속에서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들 나름대로 교사들 나름대로 계속 회의와 연수를 거듭하였고, 강도 높은 방역 업무도 함께 이루어졌으나 우리의 해야 할 일이라며 묵묵히 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제대로 된 예산 지원이나 소프트웨어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해도 교사들은 밤을 새워가며 수업을 만들고 과제를 검사하고, 평가방법을 고민한다. 우리는 정말 밤을 새우고 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교육부의 모든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고,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노력도 없었다. 한 학기를 지내보며 무엇이 필요한지, 교육부와 교육청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지 그 간단한 자료 집계 요청도 없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발표를 한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우리는 대기업에 가도 되었고, 사시나 행시를 칠 수도 있었으나 어린 시절의 꿈을 안고 교사가 되었다. 더 솔직해지면 나는 설민석 선생님의 첫 번째 수석 연구원이었다. 선생님은 무척 좋으신 분이시고 대우도 매우 잘해주셨으나 내가 국립대학에서 받은 혜택을 작게나마 공공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선생님이 계속 일하자고 하신 제안을 공교육에 헌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제 자괴감을 느낀다. 모든 민원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이제는 맘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만드는 정책을 전국의 교사에게 종용하고 있는 교육부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좋은 기회들을 버리고 이 직업을 선택하였는가 자괴감이 든다.


교사는 자부심 없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직업인데 국가가 나서서 우리에게 자괴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아이들을 위로한다. 상처 받은 마음을 안고도 고3 아이들을 위로하며 진학 지도를 해야 한다. 우는 학부모와 한 시간 통화를 하며 또 위로를 건네고, 생기부를 쓰고, 수업 준비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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