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수염차를 우리려는데 티백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괜찮아”
매일 마셨는데 티백에 뭐가 쓰여있는 줄 처음 알았다.
아마도 오늘 이 말이 크게 위로가 되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결정해 온 순간들마다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청소년 우주인을 위로하기 위한 방향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그만하면 충분히 과거의 나는 위로하였고, 수천 명을 가르쳤을 것이니 그중 몇이라도 위로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
가장 중요한 것인데 늘 뒤로 미뤄두는 것,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잘 들어주어야 한다.
세상이 들려주는 큰 목소리보다 아주 미세하고 가느다란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몇 개월 연기를 배우면서 내가 지금까지 내는 목소리들이 내 목소리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친절해 보이기 위해, 재미있어 보이기 위해, ~~ 하기 위해...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는커녕 귀로 들리는 목소리마저 잃고 살기도 한다.
연기를 배우다 찾은 내 목소리는 그렇게 낮지도, 그렇게 높지도 않고, 그렇게 가볍지도 않더라.
어릴 때 목소리가 기억나는 듯도 하다.
책 읽기 대회, 구연동화 나갈 때의 그 까랑까랑한 목소리.
때때로 되바라져 보이거나 너무 자신감이 넘쳐 겸손하지 않게 들릴 것 같은 그 목소리가 나오더라.
목에 힘을 주자 않아서 목이 쉬지 않던 어릴 때의 그 목소리.
지금은 목을 눌러서 소리를 낸다. 타인의 감정을 위해서...
지금은 춤을 못 추는데 예전에는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현대무용 시간에는 작품을 보고 교수님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잘하지 않지만 자유롭게 움직였다.
지금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10년 간의 사회생활은 우리의 몸도 속박한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감추고 살고 있을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위해 타인의 판단에 나를 맡길까?
나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해야 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