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짝사랑은 괜찮은데 누군가와 연인이 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다고 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짝사랑, 참 경제적이지? 상처도 안 받고, 돈도 안 들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그냥 내 마음에 든 감정이지. 그건 관계가 아니야. 노력해야 해.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 사랑하니까. 효율적인 거 좋아하지?"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효율적이지 않은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냐는 듯이.
"그런데 관계는 참 효율적이지가 않아. 최소의 시간만 만나서 최대로 나를 좋아하게 하겠다.. 그런 건 없어. 관계는 가장 비효율적인 거야. 내가 들인 시간이나 감정에 비례해서 그 결과가 나오지도 않아. 부모 자식을 봐. 얼마나 손해야. 그런데 그게 관계이고, 사랑인 것 같아.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마. 그럴 수도 없고."
"좋아한다며.. 그런데 왜 약속을 미뤘어? 그날도,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시간이 많았잖아."
"그냥.. 그 사람은 언제든 만날 수 있잖아요."
나도 모르게 나의 동공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내 표정이 꽤나 굳었고, 큰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상에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왜요? 다음 주에 만나도 되고.."
"느티나무같이 500년이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모두 이별해. 결혼을 해서 60년을 같이 산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이별해."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었다.
"우리는 죽으니까...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되지. 그리고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는 존재들이야. 당장 내일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할 수도 있고, 외국으로 나간다고 할 수도 있어. 나를 좋아했던 그 사람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릴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야. 영화 ‘늑대소년’ 같은 거, 여자들의 환상이잖아. 죽지도, 늙지도 않고 소년의 모습 그대로 기다리는 늑대소년. 그거 그냥 환상이야.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 사람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그 관계를 망치고 있는 거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그런데 거절을 당해서 네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거든, 그때에는 고백하지 마."
"어떻게 안 흔들려요? 상대방이 거절을 했는데."
"상대방의 의견이 나의 본질을 바꾸지 못해. 그게 뭐든, 무언가 안 맞아서 만나지 못하거나 이별하는 걸 거야. 그렇다고 내가 변하는 건 아니야. 네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서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게 변할까? 아니야. 너는 그대로 좋은 사람이야. 그게 뭐든, 너를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해."
몇 시간을 이야기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오니 허리가 아프고, 목이 아팠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다.
나도, 다시 생각해 보려고 기록해둔다.
효율적이지 않은 관계와 언젠가 있는 이별과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