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서 사라져 가는 얼음처럼 내 잔고도 사라져 가고
그렇게 서울에 와서 한 동안은 내가 관심 있는 직무와 최대한 관련 있는 공고들은 웬만하면 다 지원을 해서 연락이 온 면접들은 무조건 갔었었다. 지금에서 이때를 다시 돌이켜 보면, 뭔가 나 스스로 큰돈을 가지고 있던가 특별히 잘난 부분은 그다지 없었던 거 같은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막 흘러 너무 칠 때가 아니었나 싶다. "감히 나 같은 고급 인력을 안 뽑아?"라는 정말 같잖은듯하면서도 귀여운 마인드 였달까.
하지만, 열정과 패기 뻔뻔함으로는 다 해결이 되지 않았다. 면접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원하던 공고에서는 죄다 다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나는 가슴 한편 속 막연한 혼자만의 희망을 품은 채, 월세를 내야 하는 날짜를 바라보다가 알바 구인 사이트로 내가 머무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 이력서를 지원하게 되었다. 마음만은 이력서를 넣은 당일날부터라도 바로 일하고 싶은 불같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지루함과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 스스로 잠겨 있을 무렵, 어느 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난 매장에서 면접을 봤다. 그런데 독특한 건 이 카페는 매장 면접을 한 번 보고 통과가 되면 최종적으로 본사 면접을 봐야만 했었다. 무슨 파트타임 알바 자리가 회사 면접도 아니고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머릿속으로는 불만이 생기면서도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덕분에 아침부터 강남 부근을 구경해 볼 수 있겠다는 스스로의 긍정 최면 합리화에 잠이 덜 깬 눈으로 본사 면접에 갔었다. 그렇게 난 까다로운 두 가지의 면접을 본 다음,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큰 공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오후 5시~오후 10시 정도까지 근무를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전에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지만 1층에만 있는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큰 평수였다.
그 카페에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딱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 카페를 이용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두 세명 혹은 다섯여섯 명 무리로 건물 내부와 연결되어 있는 카페 뒷문으로 들어와서 카페 앞문으로 나간다. 카페 뒷문과 앞문과의 거리가 조금 있기에 항상 카운터 쪽을 우르르 여러 명이 지나가는데,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누가 봐도 영업에 방해될 정도의 지속적인 움직임들이었다. 듣기로는 건물 내부에 이야기를 해서 카페 내부가 아닌 건물 문으로 나가서 이동을 하라고 말을 했지만, 남한테 피해가 가든 안 가든 간에 본인의 편함과 시간 아낌을 위해서 남의 영업장 안을 통해 그것도 거의 매일 동선을 줄이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고 정말 재밌었다. 그 카페 직원들은 그런 장면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일부로 카페 뒷문을 통해 앞문으로 나가는 건물 내부의 이기주의자들이 내가 있는 카운터를 지나 앞문으로 나갈 때마다 오히려 더 크게 인사를 했다. 카운터 근처에 사람이 아예 없고 그 이기주의자들 몇 명만 카운터 앞을 통해 앞문으로 다가가는 상태일 때 내가 그들에게 크게 인사를 하면 뭔가 애써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묘하게 민망해하는 모습들이 티 나는 몇 명이 있었는데, 그 반응들이 너무 재밌었다. 하하하 나 좀 악마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건물 내부에서 우리가 위치한 카페가 1층에 있었으면, 지하 1층에 사이비 종교 단체가 하나 있었다. 처음에 일하러 갔을 때는 그들의 존재를 전혀 몰랐으나, 지속적인 특정 요일만 되면 단체 손님 마냥 우르르 카페로 몰려와서 긴 자리 하나를 다 차지하고도 부족할 정도였다. 외모적인 비하는 아니지만, 그동안 길거리의 도를 아십니까 라던지 딱 봐도 이상하다의 느낌은 전혀 풍기지 않은 채,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 같이 보였기에 겉으로만 보고는 역시 사람은 다 알 수가 없다는 걸 한 번 더 알게 되었고 나는 퇴근을 하기 전 분리수거를 위해 원치 않게 큰 쓰레기봉투를 하나 들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었어야 했는데, 다행히 그 시간대는 크게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관찰은 여기까지만 가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