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고든의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읽고 나서
한 2년 전부터 해온 심각한 고민이 있다. 그 어떤 일에도 잘 놀라지도,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점. 소위 “다 해봐서 새로울 것도 없다”는 태도로 그 모든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심지어 사랑에서조차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해봤다는 자만감(?)때문인지, 분명히 원래 로맨틱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나만의 착각?), 사랑에 대한 기대감도 별로 없는 무미건조한 바닐라 같은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작년도 발리 여행 중, 어두컴컴한 우붓(Ubud)의 골목길을 두 명의 친구와 걸어가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로컬 청소년 중 한 명이 내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갔다. 문제는 내 반응이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본 내 친구들이 오히려 펄쩍 뛰며 난리고, 정작 나는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What’s the point? 어린애들이 호기심에서 그런 거고, no harm done.”이라고 대답했다.
이 무심함, 아니면 역겨운 침착함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나는 쿨한 사람도 아니고, 쿨하다는 말 자체를 아주 싫어한다. 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더 이상 날 파르르 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연히' 발견했지만, 결국 내 의지로 들어간 (이제는 없어진) 빨간 책방 카페에서 운명처럼 만난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읽으며, 나의 역겨운 침착함이 어디에서 근원 하는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바로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난 건 아지니만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자유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잠재적 방랑자' 즉 이방인이며, 나 자신이 이방인임을 강하게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무국적자로 오랫동안 살다가, 미국을 떠날 무렵에야 시민권을 땄다.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 땅에서 산 기간은 채 두 달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계속 외국인으로서 살아온 것 같다.
오히려 미국으로 처음 이사 갔을 때, 나는 모든 감정이 충만한 상태였다. 아무도 날 원하고 필요로 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고, 바보 멍청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랬는지 사랑도 치열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대학을 옮기고,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접근하고, 장학금을 달라고 요구하고(당근 나한테 장학금을 안 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머리가 어떻게 획 돌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절실함이 있었다. 알바를 하면서 만난 피터라는 키도 작고 통통하고, 얼굴도 좀 유아스럽게 생긴 아일랜드 남자아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 아이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절실함이 그땐 내게 있었다. 직접 너한테 관심 있어라고는 말도 못 하는 주제에, 컨트롤할 수 없는 이상한 절실함을 동료들이 모두 알아버렸고, 결국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떠나야 할 사람이었고, 서로에 대한 아쉬움만 남긴 채 그렇게 떠나버렸지만 말이다. 더블린으로 이사 갈 생각도 내게는 있었다! 돈이 원수인지 은혜인지 그때 아일랜드로 study abroad 할 재정적 상황이 되지는 않아서 결국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되었더라면 또 삶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는 또 미지수. 그런 미지수로 가득 찬 것이 또 인생이 아닐까.
모든 것이 마음가짐이다. 난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사람 내지, 내가 이곳에 계속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나를 역겹게 속박하고 있다.
위의 글을 쓴 시점은 2016년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나를 역겹게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들은 내게 여전히 무덤덤하다. 다음은 "인류학처럼 여행하기"에서 마음에 닿았던 구절들이다.
"경계에 위치한 집단이 가진 이런 뚜렷한 유동성이 이방인의 핵심적 특징인 가까운 동시에 멀다는 특성을 낳는다. 이방인이 가진 이런 특징은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이방인은 집단 내 많은 구성원들과 교류를 한다는 점에서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먼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이러한 교류는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친족이나 공동체나 직업적 관계처럼 이런 교류가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 먼 상태는 “무관심과 적극적 참여"로 이어진다. 이런 역동적인 모호함이야말로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가진 특성이다. 이방인에 대해 나타내는 대표적인 태도로는 양가성(ambivalence: 서로 반대인 감정이나 경향, 자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상태), 무심함, 친근함, 두려움, 적개심이 있다. 이방인은 자기가 방문한 지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므로 설사 장기간 머물더라도 그를 “그 땅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절대 없다. 경계인의 진정 고유한 특성인 모호함, 즉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대표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바로 이방인이다."
"사회 밖에 위치하고, 사회 내에 존재하는 어떤 동향과도 딱히 관련이 없는 이방인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판정을 내리는 사람은 보통 국외자라고 지멜은 말한다. 더욱이 이방인인 “그를 사람들은 정말 놀랄 만큼 솔직하게 대할 때가 많다. 그에게 마치 고해성사처럼 비밀을 털어놓을 때도 있다. 훨씬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조심스럽게 숨기는 비밀을 말이다.” 이런 객관성은 일종의 자유로움이다. 이방인에게는 어떤 상황에 대해 편견에 사로잡힌 인식과 평가를 낳은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강한 신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