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의 "셈프레 수잔(Sempre Susan)"을 읽고나서
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는 것, 세상과 사람에 대한 동경이 하나하나 깨져가는 과정을 어떤 이들은 성숙이라고 말한다. 나는 수잔 손택 (Susan Sontag, 수잔 손택) 회고록 ‘언제나 수잔’(Sempre Susan)을 읽으며 그 성숙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된다.
수잔 손택은 내가 동경하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이다. 명문대인 시카고 대학교를 18살의 나이에 졸업한 그녀는 사라예보의 내전을 알리고자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다.
여기에 네 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사진에 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의 에세이도 남겼다. 그녀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다.
예전에 읽었던 산문집 <내가 사랑한 여자>가 문득 떠올랐다. 소설가 공선옥 씨와 김미월 씨가 자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 열 명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내 목록에는 누가 들어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우리가 사랑한 여자들이 누구인지를 물어본다면 수잔 손택을 꼽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나는 도서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수잔 손택의 책들을 접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해인 2004년에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세상을 떠난 그녀에 대한 유일한 애도는 책장에 꽂힌 수잔 손택의 책들을 다시 한번 만져보는 것이었다.
특별히 수잔 손택에 관한 책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닌 ‘언제나 수잔’을 발견하게 된 경로는 이렇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는 책을 블로그를 통해 접했다. 아이 없는 삶을 살기로 한 작가 16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6명의 작가 다수가 생소한 작가였고, 나는 일일이 그들을 검색하게 된다.
그들 중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고록이 눈에 띄었는데, 그녀는 수잔의 아들 데이비드 리에프의 여자 친구 였다. 시그리드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데이비드와 사귀기 시작했다.
결국 시그리드, 수잔, 데이비드 이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이는 우리의 관점에서도 미국의 관점에서도 일반적이진 않다. 이런 환경을 겪으며 쓴 시그리드의 회고록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수잔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 이들의 특이한 설정이 더해져 ‘언제나 수잔’이라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그리드 누네즈에겐 수잔 손택은 여러모로 짜증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그리드는 수잔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 뿐 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소설가를 꿈꾼 시그리드는 지적인 면에서 수잔에게 배운 점이 많았지만, 정작 수잔의 소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 또한 수잔 손택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회고록에서의 수잔은 부모님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고 여기고, 아마도 이로 인해 그녀는 다른 방법으로 아들 데이비드를 양육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심지어 아들의 돌봄을 받고 싶어 했다. 이런 면에서 데이비드는 수잔의 아들이기도 했고 아버지이기도 했다. 어머니인 수잔 손택을 ‘엄마’가 아닌 ‘수잔’으로 부르게 했다. 버릇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부르도록 어렸을 때부터 수잔에게 교육을 받아서였다.
자녀들을 독립적으로 양육하는 미국의 가정환경 속에서 아이의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부모님의 집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수잔 손택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뉴욕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는 점, 여기에 뉴욕의 물가가 비쌌던 점도 한 몫을 했겠지만, 시그리드는 그녀와 같이 살면서 데이비드와 단둘이 시간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식욕이 왕성했던 수잔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또 강연이나 독자와의 만남을 갖을 때 Q&A 세션에서 쉽게 발끈하곤 했다. 마치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질문을 하느냐?’라는 식으로 질문자를 대했다.
시그리드가 수잔에게 복잡한 감정을 보인다. 연민과 짜증 그리고 동경이 묘하게 뒤섞였다.
적어도 <언제나 수잔>을 통해 드러나는 수잔의 모습은 <타인의 고통>, <사진에 대하여>,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해 내가 우상화했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수잔의 아들 데이비드가 발표한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왜 거짓말을 해야 했나'라는 짤막한 글에서 비춰진 수잔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70대 초반의 나이에 삶을 마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그녀는 생각했을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둥바둥 했다. 죽음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나의 거만함은 그녀가 좀 더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길 바랬다.
사랑하고 동경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완벽을 기대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아직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찌질함과 추함을 발견하고 나서 생기는 애틋함, 그 애틋함을 갖고 다음 세상에 수잔을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다.
수잔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