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숙'의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상세)
등록기준지 강원도 행복 군 가왕면 하면리
본인 '박일숙' 1964년 02월 20일 640220-*******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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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항
부 박남일 사망
모 최영월 1939년 03월 01일 390301-*******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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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이인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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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가선' 1982년 09월 09일 820909-******* 여
자녀 '이나선' 1983년 06월 30일 830630-******* 여
* 사실이 아닌 소설 속 내용입니다.
큰 이모 '박일숙'은 항상 할머니를 원망하며 가족에게 아픈 기억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항상 할머니에게 "엄마 왜 그랬어?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큰 이모 '박일숙' 말에 의하면 초등학교 때, 동네 아이들이 교실에서 책을 펼쳤을 때, '박일숙'은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난한 집안의 일손이 되어야 했다. 1970년대, 그 당시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가정의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당시 불과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았던 '박일숙'은 여리고 작은 손과 말캉했던 발을 그렇게 무겁고 뜨거웠던 현실의 책임을 안고 밭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그 시절의 상처와 미련,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깊숙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과거는 일찍이 성장하게 만든 부족한 환경의 연속이었고, 중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밭일해야 했던 시골의 삶에서 멀리 도망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박일숙'은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희망을 품고 할머니를 떠나 도시로 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선택으로 결국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 청년을 만나 20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통해 시골에서의 삶과는 다른 행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혼하고 3년도 채 되지 않아 남편 '이인재'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이후 평생을 술과 도박에 빠져 그녀에게 또 다른 지옥 같은 인생을 선사해 주었다.
'박일숙' 그녀에게는 예쁜 두 딸 있었는데 남편 '이인재'가 회사를 그만두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이인재의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지주 역할을 했다. 눈앞의 가정을 위해 그녀의 하루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새벽이슬이 맺힌 시간에 일어나 식당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밤늦게까지 또 다른 식당 일에 몰두해야만 했다. 하지만 벌어오는 돈 모두 남편 '이인재'가 탕진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연속된 고된 일상은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녀의 생활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 무거운 짐에 무릎을 꿇었다.
'박일숙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 '이가선'이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몇 년 동안 세상에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 두 딸들이 느꼈을 감정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할 것이다. 두 딸들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술과 도박 중독의 그림자 속에서 흘러갔다. 그들이 마주한 가정 환경은 그 어떤 이야기 속에 나올 법한 평범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의 불안정한 모습은 그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어머니는 반대로 그 어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바위같던 그녀의 모습이 무너져 내린 것을 보게 되었다.
어떻게 그 감정을 겪지 않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평가하고 공감했다 할 수 있을 것 인가.
그렇게 그 시절의 기억은 두 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되어 큰 이모 '박일숙'이 할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박일숙'과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두 딸들이 만들어 낸 아픔과 원망,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곳에서 나는 단순히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았을 뿐 그 어떠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그들의 상처에 대해 말을 함부로 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내가 감히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의 폭풍처럼 몰아쳤던 인생을 조용히 들어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고통이라는 감정 앞에서 때론 잘못된 위로의 말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정 앞에서 소박하게, 그리고 조용히 감정들을 지켜보는 것이 내가 상대의 감정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예의였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 무한한 흐름 속에서 삶의 모든 순간과 이야기는 서로 얽히며 펼쳐졌다. 마치 끝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 흐름 속에서는 수많은 그들의 지옥 같던 삶과 천국 같던 추억이 교차했고 그 강물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변화하고 성장해 갔다. 그녀의 두 딸 들은 '박일숙' 삶에서 나와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했고 그 길을 찾아 그녀의 곁을 떠났다.
'박일숙'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사랑과 헌신을 바쳤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자식들이 자신을 버리고 그들만의 길을 선택하려 한다고 생각해 배신의 감정이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와 자식에 대해 원망의 감정을 품게 되었다.
관찰자였던 나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선택한 길은 단순한 청춘의 반항이나 우발적인 선택이 아니었고 삶을 위한 필연적이고 생존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두 딸들도 완전히 '박일숙' 자신의 엄마에게서 떠나려고 하진 않았다. 그들은 엄마와의 관계와 감정의 미로 속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찾아보려 애썼다.
그러나 '박일숙'이 그녀의 딸들에게 바라는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커져갔다. 그것은 마치 지나가는 등산객이 대충 올린 돌 탑처럼 그녀의 기대와 바램은 두 딸들의 감정과 경제적인 상황은 고려 되지 않은 채 점점 크게 쌓여갔다. 이런 부담감은 두 딸들에게 더 큰 상처와 원망 그리고 분노가 되어 자신의 엄마에게 도망쳐야 된다는 생존적 반응으로 바뀌게 되었다. 큰 이모 '박일숙'이 할머니에게 떠났던 것처럼..
그리고 '박일숙의 가족관계증명서'의 또 다른 인물, 그녀의 삶을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남편, '이인재'는 변화와 성장을 겪지 못한 채 그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그는 삶의 중심에서 계속해서 술을 찾았다. 술은 그에게 잠시의 위안과 도피처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의 삶의 술 그 자체였다. 결국 '이인재'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삶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집에서 술을 마시며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술 속에서 시작되어 술 속에서 끝났다. 한 번의 변화와 성장이 없는 채로 그렇게 그냥 흘러갔다.
'박일숙' 그녀는 이렇게 고된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느덧 60이라는세월이 흘러 넘쳤고 그런 인생이 85세의 엄마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박일숙' 마음속에는 항상 할머니를 향한 날카롭고 복잡한 감정들이 존재했다. 할머니를 향한 원망이 깊게 뿌리내렸고 그런 원망 속에서 그녀는 할머니를 향해 항상 부정적인 감정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말을 통해 내비쳤다.
그러나 그런 강한 원망의 감정 속에서도 그녀는 할머니에게서 완벽하게 떠나지 못했다. 떠나지 않은 건지 못 한 건지 그 감정은 내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할머니와의 연결된 끈을 끊을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 속에 분명 존재했다. 아마 그녀의 마음속에는 할머니를 향한 애증과 원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 이다. 그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혹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다. 그런 알수 없는 감정들이 한 데 얽힌 덩굴처럼 그녀를 감싸 할머니 옆에 묶어 두었을 것 이다. 그래서 결국, 지금도 그녀는 할머니와의 그런 인연 속에 복잡한 감정들로 이루어져 묶어 두고 주말마다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할머니가 '나의가족관계증명서 母 박이숙' 집으로 오신 후, 주말에 '박일숙'은 '박이숙'의 집으로 찾아와 할머니와의 특별한 시간을 가지는데 그들은 함께 TV를 시청하며,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만으로 그 감정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박일숙'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지만 에게 할머니를 온전히'나의 가족관계증명서 母 박이숙' 혼자 할머니를 책임지게 했다는 미안한 감정과 할머니와의 복잡한 감정들로 주말마다 오고 있다. 물론, 매주 주말 하루도 빠짐없이 오지는 못 했지만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들 중 같이 살고 있는 '박이숙'을 제외 하고 가장 많이 할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다. 내가 큰이모 '박일숙'의 모든 세월과 그 감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는 할머니를 향한 애증과 원망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할머니를 완벽하게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