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숙'의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상세)
등록기준지 강원도 행복 군 가왕면 하면리
본인 '박삼숙' 1974년 07월 17일 740714-*******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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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항
부 박남일 사망
모 최영월 1939년 03월 01일 390301-*******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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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최문남 1970년 07월 20일 700720-*******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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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최훈' 2001년 01월 15일 010115-******* 남
자녀 '최지수' 2003년 11월 02일 031102-******* 여
* 사실이 아닌 소설 속 내용입니다.
'박삼숙'은 그녀는 여섯 형제자매 중 막둥이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삶의 흐름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후로 그녀의 삶은 할머니와의 둘이서의 힘겹게 흘러갔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큰 산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박삼숙'은 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며 듣던 그의 지혜로운 말들, 그리고 함께 보냈던 따뜻한 오후의 시간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 아픔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그리움과 슬픔, 그 중간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시작해 나갔다.
'박삼숙'은 '박일숙'처럼 할머니를 원망하고 있다. '박일숙'처럼 "엄마 나한테 왜 그랬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녀가 가족모임에서 술을 한잔 마실 때에는 눈물을 보이며 "우리 엄마는 딸은 없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박삼숙'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녀는 할머니와 그리고 백수였던 '박이섭'과 셋이 지냈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박이섭'은 집에 항상 없었고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왔다. '박일숙'은 중학교 때 집을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고, '박일섭'이 고등학교 졸업 후 도시에 나갔을 때에는 '박삼숙'나이가 겨우 14살이었다. 그리고 '박이숙' 그녀도 고등학교 시절 도시에 나가 '박삼숙' 그녀 주변에는 아무 형제도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고된 시간을 보냈는데 '박삼숙'은 그때 기억을 너무 무섭고 힘들었던 이거으로 가지고 있다. 할머니가 밤늦도록 일하느라 오지 않아 밤새도록 기다리며 혼자 밥을 해 먹고, 아침이면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을 돕고 메주를 만드는 일을 도왔다. 특히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면서 생활했던 할머니는 일찍 나가 두부가 다 판매될 때까지 시내에 노상을 깔고 있다가 밤이 돼서야 그 먼 길을 걸어서 왔기 때문에 등불 하나 없던 시골이 '박삼숙'에게는 혹시 모를 할머니의 '부재'라는 두려움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렸던 아이'박삼숙'의 두 손은 이른 나이부터 무거운 물동이와 함께 힘겹게 삶을 짊어지게 되면서 학교에서 다가오는 즐거운 소풍의 소식에도 그녀는 '소풍'이라는 단어가 그 당시 감당하기에는 무겁고 속상했다고 한다. 학급 친구들은 신나게 소풍을 준비하는데 '박삼숙'은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포기하고 빈손으로 소풍을 갔다.
그리고 할머니는 '박삼숙' 자신보다 4살이 더 많은 '박이섭'에게 일도 안 시키고 새벽이면 가마솥에 콩을 뿔리고 띄우는 일, 무거운 두부를 일구어야 하는 일 등 고됨과 서운함이 마음속 깊이 쌓여 술을 마시면 항상 '엄마는 딸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할머니는 작은 아들에게 감정의 표현을 하거나 와도 반기지 않는다. 유독 큰아들에게 애착이 심하다. 그런데 왜 '박삼숙'이 일하는 동안 놀고 있는 '박이섭'에게는 그 어떤 일도 시키지 않은 걸까? 어쩌면 '박일숙', '박삼숙'은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혼자 끙끙대며 힘겹게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싫어 일을 나누어 돕다가 그게 당연하게 되었고 '박일섭'과 '박이섭'은 그저 감정이 무뎌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 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박삼숙'은 도시로 나가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도전과 변화를 주었다. 큰 도시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시골에서의 경험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갔고, 그 노력 덕분에 시장에서도 그녀의 장사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박삼숙'은 서울 종로의 한 시장에서 억척같은 생활과 치열한 장사를 하며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장사 실력은 크게 높아지면서, 그녀의 노력과 끈기는 다른 상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중 시장에서의 영향력 있는 상인 중 한 명이었던 '최영택' 그는 '박삼숙'의 능력을 보고,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최문남'의 아버지, '최영택', 그는 시장에서 자리를 확고히 다진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래서 그는 '박삼숙'이 가진 그 무언가를 직감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녀는 힘들게 살면서도 투지와 결집을 잃지 않고 진실성을 유지하는 모습이 '최영택'의 눈에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박삼숙'을 며느리감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 '최문남'은 90년대 당시 X세대,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편안함, 그리고 럭셔리한 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그는 부모님의 부를 등에 올라 무리 없이 살아가며, 그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오렌지족이라는 당시의 유행어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서의 특권과 환경 속에서 자랐다. 대학교에서 골프학과를 전공하며 골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별다른 목표나 꿈 없이 부유하게만 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최영택'은 그의 아들이 너무 철부지로 자라고 있다고 걱정했고 그를 바로 잡아 줄 며느리 '박삼숙'을 보게 된 것 이다. '최영택'은 '박삼숙'과 '최문남'의 만남을 주선하며 '박삼숙'이 '최문남'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박이숙'의 생각은 달랐다. 부잣집에 결혼을 하면 고생할 것을 알기에 많이 말렸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문남'이 직업이 없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박삼숙'과 다투면서 까지 '박이숙'은 많이 결혼을 반대하고 잘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런데 '박일섭'과 할머니는 적극적으로 결혼을 권장했다. '박일섭'은 '최영택'이 시장에서 워낙 유명한 사업가라 금융권에서도 그 소문이 자자해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박삼숙'이 부잣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정말 적극적으로 '박일섭'이 그 둘의 결혼을 지지했다. '최문남'과 결혼을 시키기 위해 '박일섭'은 '최영택'의 집으로 각종 명절 선물을 보내며 노력을 했고 결국 '박삼숙'은 '최문남'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결혼을 하면서 혼수 할 비용도 없었던 '박삼숙'을 대신해 '박일섭'은 모든 혼수를 대신해 주었다. 그만큼 '박일섭'은 '박삼숙'의 결혼에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박삼숙'은 그녀의 인생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큰 선택 앞에서 '박일섭'의 지원과 응원은 확실히 보였고 그는 모든 것을 준비해 주며,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즉시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보다 더 큰 계산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박삼숙'과 '최문남'의 결혼이 성사된다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이익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박일섭'의 행동을 돌이켜보면, 그의 적극적인 지원은 단순한 형제의 애정이라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원과 응원에는 부정할 수 없는 노력이 있었다. '박일섭'이 왜 이렇게까지 노력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무엇이 흘러가고 있었는지, 그것은 오로지 '박일섭'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이후 '박삼숙'은 그녀의 삶이 꽃피는 길을 걸으며, 황홀한 결혼 생활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부자인 '최문남'의 집으로 시집을 가면서, 그녀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잣집의 꽃보다 더 화려한 향연 속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곧 집안에서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갈등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최영택'의 집에서는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가사일을 그녀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그러한 업무는 그녀에게 매우 힘들게 다가왔다. 단순한 집안일에서부터, 집안의 행사 준비까지. 그녀는 어느새 그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최문남'의 세 누이들로부터 온갖 언어적인 폭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그녀의 출신과 배경을 이유로 여러 비하의 말들을 던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박삼숙'은 그 모든 것을 참아내며 견디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녀 둘은 시누이가 운영하는 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구타를 당하게 되었다. 두 아이는 그 경험으로 인해 깊은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되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며, 그녀는 그 상처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삼숙'의 남편 '최문남'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보호해 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과 아이들의 상처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박삼숙'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렇게 '박삼숙'은 외부의 세상과 집안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어릴 때는 '박삼숙'과 '최문남'의 부유한 삶, 그들의 반짝이는 물질적인 재산들은 나에게는 꿈처럼 보였다. 그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 고가의 패션 아이템, 항상 바뀌는 최신의 자동차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성공한 삶'의 상징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나의 편협한 시각이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그들이 겪는 일상의 고민들을 체감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리고 '박삼숙'의 실제 삶의 이면을 알게 되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물질적인 풍요 뒤에 숨겨진 그녀의 고통과 그녀의 삶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로는 채울 수 없는 깊은 감정의 상처와 무게였다. 이제 나는 그런 겉모습의 반짝임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내면과 그의 진심, 그리고 그가 겪는 일상의 고민과 감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적의 나는 '박삼숙'을 바라보았을 때 부와 명성에만 눈이 멀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진짜 삶과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런 선택과 겉모습들이 얼마나 우습고 초라한 선택인 지를.
그렇게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는 생활을 꿈꿔왔던 '박삼숙'에게는 그 꿈은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가면서 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들어선 집은 외부에서 바라볼 때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녀에게는 그저 좁은 우물 안이었다. 그런 집에서 '박삼숙'은 마음속에서의 자유를 잃어버린 듯했다. 돈에 대한 작은 결정 하나조차도 스스로 내릴 수 없게 되었으며, 심지어 10원 한 장을 쓰는 것조차도 눈치 보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이들이 성장하며 겪는 다양한 문제와 그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불만족은 그녀를 점점 더 깊은 고민 속으로 빠트렸다. 그녀는 결국 '최문남'과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박일섭'에 대한 그녀의 기대와 실망은 큰 간극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의 도움과 지원을 통해 행복한 결혼 생활과 어떠한 이익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대는 점점 흐려져 갔다. '박일섭'은 어떠한 도움이나 지원을 받지 못했고, 반대로 그녀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지도 못했다. 심지어 그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는 일을 했지만, '박삼숙'에게는 했지만 20년 전부터 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박삼숙'과 '최문남'의 결혼을 적극 권장했던 그는 사실 그 결혼에서 어떠한 이득도 얻지 못한 채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외면적으로는 친절하고 관대해 보였지만, 깊은 곳에서는 그의 간사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그의 이런 행동을 볼 때 그의 진실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누구나 진실된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간사함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박일섭'은 그의 행동과 선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고 그는 자신의 간사한 본성을 깨닫고 그로 인한 결과를 직면해야만 한다. 자신의 인생과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고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박일섭'처럼 결국 자신을 속이는 길을 택하게 될 수 있다.
인생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늘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는 항상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로 인한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고, 그 결과로 인한 뒤늦은 후회나 미련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인생에서의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부디 '박일섭' 그 가 남은 인생을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박삼숙' 그녀도 인생의 과정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그 두 사람이 과거를 후회하고 간사하게 행동했던 모든 일들에 배움을 얻고 마지막 할머니에게는 후회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