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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필 Sep 26. 2023

PART3. 나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가족관계증명서의 무게

가족관계증명서(상세)

등록기준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해달 2동 별빛골

본인 '이은혜' 1990년 09월 20일 900920-*******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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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항

부 '이영재' 1968년 01월 01일 680101-******* 남

모 '박이숙' 1969년 05월 01일 690501-*******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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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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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최영월' 1939년 03월 01일 390301-******* 여


* 사실이 아닌 소설 속 내용입니다.


PART3. 나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가족관계증명서의 무게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있다. 그중 '가족관계증명서'그 종이 한 장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지닌 것인지 깨달았던 것은 그날 이후였다. 할머니는 아들 박일섭만을 찾고 행복해하신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그녀의 눈에는 오직 아들 '박일섭'만이 있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족관계증명서'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종이 한 장에 적힌 관계를 넘어서 심장을 누르는 아픔과 분노 그리고 절대로 끊을 수 없는 나의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였다. '할머니 가족관계증명서'의 무게는 나에게 묵묵히 다가왔고 나의 엄마 '박이숙', 할머니 '최영월', 그리고 '박일섭'과 그 형제들. 이들 여섯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나는 무게의 고통과 부담감을 느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 키워드로 "#사랑, #책임, #애정, #보호, #추억, #화함, #터전, #혈연"등의 단어가 나온다. 모두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긍정적인 단어들로 가득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생각하면 행복한 추억,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가족'은 현재 남보다 못한 관계, 배신, 상처, 고통 그런 단어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들의 대립과 다툼 그 속에서 받은 상처와 배신의 연속만이 남아 있었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한 품은 나에게는 없었다. 나에게 '가족'은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관계 더 나아가 '죽이고 싶은 관계'가 되고 있었다.


虎口
다른 사람의 이용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렇게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미묘한 감정은 아빠 '이영재'에 대한 분노로 화살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영재' 그는 형님인 '박일섭'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이영재' 그는 '박일섭'이 우리 가족을 무시하고 거짓말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허허' 웃었고, 할머니가 가족과 다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에 거금 몇 천만 원 들여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형제와 그 가족들을 여행시켜 주었다. 그러나 '박일섭'은 '이영재'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제주도 여행 소식이 '이영재'의 공으로 동네에 소문이 퍼지자 "이제부터 우리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너네 부모한테나 잘해"라며 본인의 민망함을 표출해 내기 바빴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이영재'는 계속해서 '박일섭'에게 관대했다. 그는 '박일섭'이 동네에서 거짓말과 허풍을 떨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진실로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럼으로써 '박일섭'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그런데 '박일섭'의 행동은 점점 더 무례했고 목소리에는 무시가 섞여있었다. 그의 행동에서는 우리 가족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지금도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것은 아빠 '이영재'그리고 엄마 '박이숙'과 그의 자식들이다. '박일섭'이 연락을 피하고 도망갔을 때, 할머니를 모시자며 집으로 데려온 사람도 '이영재'였다. 그런데 '박일섭'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며, 자신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왔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 '박일섭'의 이런 행동으로 '이영재'의 노력과 희생을 가렸지만, 아빠 '이영재'는 그런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할머니와의 소중한 시간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그 어떤 칭찬보다 값지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솔직히 아빠'이영재'와 우리 가족의 노력, 희생 나도 그런 단어에 관심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이런 노력은 가려져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를 버리고 상처만 주었던 '박일섭'이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라는 말을 믿는 것에 분노했고, 아빠 '이영재'가 제발 '박일섭'에게 이제는 그만 관대하게 행동하고 인연을 끊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왜 아빠는 계속 '박일섭'에게 속아가는 것일까? 왜 그를 계속 용서하는 것일까?" 나는 너무 궁금했고 아빠는 감정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재'는 엄마'박이숙'을 위해서라고만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당연히 다 알고 있는 엄마 '박이숙'은 아빠에게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조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고 있다.


나는 착함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악랄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나도 착하게 상대에게 모든 것을 주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은 결국 자신과 그 주변을 힘들게 만들고 상처받게 만든다. 나의 아빠 '이영재'는 형님인 '박일섭'에게 계속해서 간이고 쓸개  다 주면서도 아무런 항의나 반항 없이 그저 참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결국 자신과 우리 가족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박일섭'의 거짓말과 배신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와 우리 가족 모두를 고통 속으로 빠트렸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일상은 대부분 할머니를 돌보는 일에 치여 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과 간식 시간까지 주방에서 보내고, 청소하고 방 정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8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TV를 보며 멍 때려야 한다.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려고 하면 거실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나를 찾으며 "뭘 하길래 방에서 나오지 않느냐"며 재촉한다. 그래서 거실에 앉아 책이라도 읽으려고 하면 옆에 앉아 빤히 쳐다보신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한 채 그저 멍 때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 가족 전체의 문제다. 매주 주말에 우리 네 식구 모두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12시간을 넘게 멍 때리며 졸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박일섭'과 아버지 '이영재'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 가족 각자의 자유와 행복을 포기하게 되었다.




해결책이 있는데 안 하는 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왜 모시지 않느냐고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할머니가 치매환자가 아닌 온전한 상태에서 요양병원이라는 곳은 감옥과 같다. 더구나 할머니는 요양병원은 자식들이 노인을 버리는 곳이라 생각하시고 행여 요양병원에 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아들인 '박일섭'을 손가락질할까 봐 걱정하신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요양병원의 비용은 최소 월 100만 원에서 많게는 월 500만 원까지 나오기도 한다. 형제들이 많으니 돈을 모아 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어느 누구도 그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요양원에 대한 편견이 없어 처음 어른들이 눈치를 보고 고민을 할 때 "요양원계시면 되잖아?"라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가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 이모들은 나에게 "너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알긴 하니?"라고 했고 나는 그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르신들 계시는 곳 실버타운 같이 좋은 곳도 많아"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들 돈이 없어 매달 30만 원도 걷을 수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누가 돈을 낼 것 같은가?' 도망간 '박일섭'? 빚이 많은 '박이섭'? 식당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박일숙'?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박삼숙'? 이들의 인생을 보면 각자 30만 원만 내도 150만 원으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돈도 낼 수 없다고 하니 아마 그 큰돈을 온전히 '이영재'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문제 '책임'문제가 있다. 이 모든 일을 책임질 사람, 즉 총대를 메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형제 각자 본인들은 뒤집어쓰기 싫고 금전적인 부담도 싫으며, 할머니를 버렸다는 오명을 받을 까봐 요양병원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도 눈치만 보면서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나에게 화를 냈다. 결국 '박이숙'가족들이 책임을 지고 할머니와 살든 요양병원에 모시든 온전히 '박이숙'과 '이영재'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다시 건강해지셔서 본가로 돌아가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10년 전, '박일섭'이 갑자기 집을 고쳐주겠다며 할머니를 설득해 2천만 원을 받아가고 수리를 했는데 직접 셀프로 하다 보니 집은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렸고, 집이 오히려 더 엉망이 되어 쥐와 각종 벌레들이 들끓는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


할머니가 건강하셨을 때에도 그 집에 대한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큰아들인 '박일섭'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아무도 그 집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좋다면 참고 사셔야지 어떡하겠어"라는 생각으로, 형제들 모두 할머니를 그 엉망진창인 집에서 방치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쓰러지신 이후로 몇 개월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집은 더욱 망가져버려 아예 살 수 없을 만큼 폐가가 되었다.


"가족관계증명서의 무게"라는 표현은 종이 위에 적힌 단순한 정보를 넘어, 가족 간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과 의무를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한 종이에 기록된 정보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무게'는 점점 나에게 버거워져만 간다.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 해결 방법도 없다. 형제들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도와주고 지금 일에 대해 의논하면 좋겠지만, 모두 자신에게 이 '무게'가 넘어올까 봐 눈치를 보며 피해다니기 바쁘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견디어야 할지 모르겠다.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지만, 이렇게 계속되는 상황은 너무나도 힘들다. '가족관계증명서'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관계와 문제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는 최악의 증명서이면서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종이쪼가리이고 '죽이고 싶은 가족관계 증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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