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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Jan 30. 2022

나누는 것 밖에 모르던 사람들

그녀는 예순여섯,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자식들도 다 떠난 텅 빈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게 외로웠던 모양이다. 방 한 칸을 떼어다 남에게 세를 주었다. 그 방은 서울로 이사 간 막내아들과 며느리, 손녀가 7년간 살았던 낡은 방이었다. 남편은 죽기 전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도 남기듯 집을 다 뜯어고쳐주었다. 덕분에 그 방도 꽤나 쓸 만한 모양이 됐다.


그 방에서 머물다 갔던 이들은 모두 홀아비 냄새가 나는 아저씨들이었다. 가족도 직업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은 그녀의 사돈의 팔촌쯤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사실 거의 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보일러 값만 받고 방을 내주면서도 그들의 밥을 꼬박꼬박 챙겼다. 방학 때마다 놀러 오던 손녀는 항상 문이 닫혀있던 그 방의 모습을 매번 궁금해했다. 그녀는 가끔 발로 그 문을 쾅쾅 찼고 억지로 문을 열기도 했다. 그녀가 문을 열면 쾌쾌한 담배 냄새가 집 안에 가득 퍼졌다. 어둠을 뚫고 머리에 까치집이 진 아저씨 한 명이 얼굴을 빼꼼 내밀곤 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울리지 않는 살가운 표정으로 손녀에게 인사했다. 손녀는 왜인지 무서운 느낌이 들어 할머니 뒤로 숨었다. 손녀는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 아저씨 것까지 챙기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괜한 질투심이 나기도 했다. 손녀는 말했다. “할머니 뭘 그렇게까지 해. 알아서 먹겠지.” 할머니는 빙긋 웃을 뿐 뭐라 대답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종종 손녀의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치 엄마가 거기 있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하는 아이처럼 손녀를 꼭 잡았다. 그녀는 설핏 잠에서 깨어 헛소리를 잘했다. 꿈에서 말을 하는 건지 진짜로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옹알이였다. 그래도 손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비몽사몽 간에 말했다. “그래도 집에 누구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나은 줄 알아?” 손녀는 당연히 그게 얼마나 더 나은지 알 수 없었다. 갈 곳 없는 아저씨들을 집에 들이는 게 그녀의 외로움을 얼마나 덜는지 알 턱이 없다. 그래도 그 마음이 대충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손녀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렇지, 그래도 누가 있는 게 낫지.” 하고 대답했다. 그녀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이해하기에 손녀는 너무 어렸다.


그 집엔 그렇게 나그네들이 드나들었다. 3명 정도의 아저씨가 그 방을 거쳐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오지랖 역사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큰아들은 어릴 때 길가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집에 데려와 안방에서 재운적 있다. 뜨끈한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고 한 숨 잠을 자고 집을 떠났다는 노숙인 일화는 이미 우리 동네에서 유명했다. 그녀는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누구 닮아 그렇게 속이 없냐”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그녀도 정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 닮았을까. 본인을 닮아 그런 거지. 그녀는 손녀에게 ‘넌 절대 우리 집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평생 가난에 쫓겨 한숨만 푹푹 내쉬고 살았지만 집에는 객을 들여서 먹고 마시고 입혔다. 그녀가 기억을 잃게 되어 집에도 못 찾아올 정도가 되었을 때도, 그녀는 타국에서 온 사람을 그 방에서 재우고 먹이고 있었다. 막내아들 가족에게 그녀의 병이 악화하였다는 소식을 전한 것도 그 방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제 거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기억은 잃어도 그녀의 특성은 남아있었다. 잠깐 증상이 호전될 때면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의 밥을 챙기고 약을 챙긴다고 한다. 자신이 다치고 피해받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화내지 않으면서 요양원에서 누군가를 따돌리면 그 사람을 보호하고 방어한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 집을 생각하면 그게 눈에 환하다. 늙고 노쇠하여 기억은 사라지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만큼은 지키는 사람. 그런 할머니의 손녀라는 사실이 나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나누는 것밖에 알지 못했던 사람들. 그 북적북적하던 동네가 곧 재개발이 들어간다고 한다. 아직도 그곳을 생각하면 마당에 꽃을 심고 물을 주던 할머니와 날 위해 포도나무를 심어주었던 할아버지가 눈에 선한데 집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공허하다. 그 집은 사라져도 그때 그들이 나누었던 따뜻한 온정만큼은 그곳에 영원히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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