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온 지 꼭 일주일이 되었다. 최근 1년간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는 집에 이렇게 오래 머문 적이 없다. 집에 오게 되면 잠깐 머물다 급하게 저녁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엄마는 그동안 내가 오기만을 벼르고 있던 사람처럼 나에게 무언가를 해먹이기 바빴고, 덕분에 내 입은 먹느라 바빴다. 굳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가끔 눈물이 조금 차오르려고 할 때면 눈앞에 있는 음식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넣어 우걱우걱 씹었다. 그래도 집에 오면 평화롭고 행복했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농담 따먹기도 엄마랑은 가능했으니까. 엄마는 내가 집에만 오면 집이 시끌시끌하다고, 내심 좋아하는 말투로 잔소리를 했다. 그런 쉼이 나에게는 참 행복이었다.
내 몫의 삶이 약간 버거워질 무렵, '집에서의 쉼'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12월 31일을 끝으로 회사 생활이 끝났고 난 그렇게 도망치듯 서울을 벗어났다. 그렇게 오늘로 칠일째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상담을 받고 난 이후 감정 표현이 조금 자유로워졌다. 엄마한테 괜히 떼도 써보고 아빠한테는 툴툴거리기도 한다. 스물일곱에 이래서 문제긴 하지만, 모든 걸 '상담 선생님이~'라는 말로 시작하니 엄마 아빠도 가볍지만 신뢰 어린 눈길로 나를 대해주는 중이다. 갑자기 울다가 화를 내다가 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웃다가 드르렁드르렁 잠을 자는 칠일을 보냈다.
막 입시를 마치고 대학교 입학만을 앞둔 동생은 머리를 뽀글뽀글 볶고 와인색으로 물도 들였다. 나도 저 맘때 머리에 온갖 짓을 다 했었지.. 하며 동생을 이해해보려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얘는 나랑 참 다르다. 낮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않고 새벽에는 스멀스멀 거실로 기어 나와 3시까지 롤을 한다. 10시만 되면 일어나라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엄마는, 7년 후 오후 2시가 되어서 겨우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은 동생에게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다했어?"라고 말하는 믿을 수 없는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를 너무나 과소평가하는 딸이었다. 동생은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분인지를 늘 실감케 하는 아이다. 여하튼 밤 11시, 12시가 되어도 안 들어오는 동생을 보면서, 우리 집에서도 저런 삶이 가능하구나. 한계를 넘나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엄마랑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태민이가 군대를 갔는데 소식이 없다는 이야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벌써부터 이가 시리다는 이야기, 촉촉하게 광이 나는 파운데이션보다 매트 파운데이션이 내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 중에는 더러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요즘 무기력해져서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 친구들에게 질투가 나면 나 자신이 너무 찌질 해 보인다는 이야기, 평소에 열심히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지역신문 칼럼란에 글을 기고했더니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이 와서 너무 속상했다는 이야기. 평소 스킨십을 잘하지 않는 엄마는 내가 그럴 때마다 팔짱을 꼭 껴주거나 어깨를 두드려준다. 집에 와서는 한 번 악몽을 꾸고 한 번 가위에 눌렸다. 내가 낑낑 소리를 내었는지 엄마가 그럴 때마다 이마를 만지며 살포시 깨워줬다.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나를 엄마는 오다가다 한 번씩 들여다본다. 그리고 내가 딱 커피를 고파할 시간에 맞추어 향긋한 드립 커피를 내려준다.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위로를 받으면 나는 한결 가뿐해진다.
따끈한 온수매트로 데워진 침대 귀퉁이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기 전에는 엎드려서 일기도 써본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든다. 아침이 온 걸 알면서도 늦장을 부리다가 이제 더 이상은 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밥을 짓고 있다. 사실 이런 동화 같은 나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내게 집에서 더 쉬라고 했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내가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살아갈 힘이 생기는 곳에서 칠일 째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