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하루를 다 써버릴 만큼 먹는데 진심인 사람처럼 굴었다. 신선한 재료와 균형 잡힌 식단으로 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채소 판매대에 가서 한참을 서성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다이어트 식단을 짜는 열심을 부리기도 했다. 밤이 늦도록 다음날 도서관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도 쌌다. 고구마를 찌고 양배추를 삶고 생오이를 서걱서걱 씹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나를 기대했다.
물론 전생 같은 일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요리를 했는지도 모를 만큼 식기에는 먼지가 쌓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을 레토르트 갈비탕에 대충 말아먹는 것만 해도 훌륭한 식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충 막 먹던 내가 춘천 여행을 다녀오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오랜만에 장을 봤다. 배달의 민족에서 장을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식자재마트까지 걸어가서 장을 봤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재료들이 보였다. 푸릇푸릇한 시금치, 빨갛게 익은 토마토, 된장이나 고추장, 오이나 당근. 이런 재료들을 지나치는 순간 몸이 반응했다. 몸이 지금 당장 저 재료들을 먹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의 이끌림에 철저히 반응했다. 그렇게 나의 장바구니에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스팸이나 라면 봉지가 아니라, 요리를 하기에는 세상 불편하지만 땅이 선사해 준 근사한 채소들로 가득 찼다.
자, 이제 무엇을 해 먹어야 할까? 난 원래 대책이 없는 편이다. 시금치로 할 수 있는 요리를 검색했다. 제일 위에 된장 시금치 무침이 떴다. 요리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펄펄 끓인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깨끗이 씻은 시금치를 1분 데친다. 찬물로 헹구고 물기를 꽉 짜 놓은 시금치에 된장,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는다. 깨도 솔솔 뿌려주라고 되어있었지만, 깨가 없으므로 패스했다. 조금 맛을 봤는데, 이게 웬걸. 당장 밥을 때려 넣고 싶은 맛이었다. 햇반을 돌려 시금치와 김치로만 밥을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더 데칠까 하다가 참을 만큼 맛있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얼마 만에 꺼내 봤는지도 알 수 없는 그릇을 정리했다. 한 번 몸을 움직이니 방을 청소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냉장고를 청소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에 더운물을 묻혀 바닥을 닦아냈다. 빨래까지 돌리고 나서 책상 앞에 앉고 나니,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는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동경이 그 실상에 비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평상시에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드라마를 보는데, 여행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물론 춘천에서의 나는 서울에서의 나와 다를 바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싫어하는, 안 좋은 습관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걱정 투성이인 나였다.
그러나 조금 달랐던 것이 있다면 여행길에서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새를 보고, 윤슬이 반짝이는 소양강에 머무르고, 나가서 좀 걸을까? 밥을 먹으러 갈까? 나에게 물어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는 것. 향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햇볕을 쬐면서 조금 걸었던 것. 나를 좋아하고 아끼기 위해 간 여행 같았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해 먹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참 단순하다. 너무 단조롭고, 유치해다. 내게 이런 교과서적인 힐링테라피가 먹혀들 줄 몰랐다. 아마 지금껏 나의 주변이나 세상을 향해 쓰던 에너지가 지금은 나를 돌보는 데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혼자 좋아하는 카페에서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그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진심 어린 위로가, 그 매우 흔한 “괜찮아”라는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도 있다는 것도. 그 누군가는 내가 되었다가 네가 되었다가 다시 내가 되겠지.
식탁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먹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나를 대접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내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청소하고, 내가 배불리 먹어야 하기 때문에 요리하고, 내가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즐기는 삶. 그게 이렇게 원할 정도로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생각을 해볼까- 싶어서.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다행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