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에는 글을 쓴다. 글만큼 내가 훤히 드러나는 것도 없다. 말은 흩어지고 잊히지만 글은 오롯이 남는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이라고 생각되면 더 적나라한 말도 마음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사람들에게 공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블로그나 브런치에 공유한다. 꾸준히 내 글에 하트를 눌러주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내 글을 읽을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어려서부터 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미술대회나 체육대회가 시작되면 선생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교실 구석에 처박혀 있었지만, 백일장에는 내 세상인 듯 날아다녔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다양한 글짓기 대회를 많이 열었고 나는 해마다 상을 탔다. 물론 그땐 글을 또박또박 써서 적당한 분량을 채우기만 하면 상을 줬다. 친구들 앞에서 상을 받고, 엄마가 상장을 벽에 하나씩 붙이고, 집에 오는 엄마 친구들이 나를 칭찬했다. ‘내가 글을 잘 쓰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게 일종의 자기암시 효과였을까.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여겼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때 갑자기 이민을 갔다. 집안 상황이 어려워져서 이민을 가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우리 집은 좀 복잡하고 특별해서 그게 가능했다. 사실 난 굶어죽더라도 한국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굶어죽는 것보다 가족과 떨어지는 게 더 싫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따라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 도착한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몸도 아팠지만 마음이 제일 아팠다. 나는 그 날들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글을 썼다. 사실 그건 글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낙서들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썼다. '잘 지내니? 나는 잘 못 지내'로 시작한 편지는 내가 얼마나 고단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구구절절 넋두리를 늘어놓는 글이 되고 말았다. 나라도 이런 친구한테 편지 오는 걸 반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마 부치지는 못했다. 내 글은 그렇게 적나라하고 재미없어서 남에게 보여줄 만한 모양이 못됐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남이 읽어주지 않아도,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행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 글을 제일 많이 읽는 건 나였다. 글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담겨있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게 글쓰기가 사람을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어느날 친구 K가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너, 글은 계속 쓸거지?” 그 말에 묘한 안도감이 돌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구나. 내가 할 줄 아는 게 있어서 기쁘다. 그게 글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 읽히고 있어서, 감히 행복하다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