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는다.
그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이었다. 그건 하루아침에 당신과 남이 될 수 있는 말. 줄줄 써내려가던 글자 사이에 예정 없던 마침표를 찍는 말. 함께할 날들에 부풀었던 기대감이 물거품되는 말. 어떠한 부연설명도 필요치 않을 말. 수많은 말 중에 그 말을 고른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날 이후 한번도 사랑한적 없는 사람처럼 놀랍게 태연하게 굴었고 의연했지만, 속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자리잡았다. 마른 장작에 불꽃이 튀는 날엔 잠을 뒤척였고 미래를 두려워했으며 동시에 나도 함께 미워하였다. 괜찮지만, 또 괜찮지않은 날들을 보냈다. 두려움 섞인 분노 때문이었다. 그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는 긍휼함 같은 것.
그리고 비로소, 밤새 앵앵대는 모기 만큼 성가시던 그 감정을 다스릴 힘이 생겼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미숙하잖아." 툭 내뱉은 친구의 그말 덕분이었다. 그래, 나도 미숙했다. 특히 사랑에는 더더욱 그랬다. 너도 미숙했던 거다. 이것도 나름의 용납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고나서야, 비로소 웃었다.
이제 추억할 용기가 생겼다. 아,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 말을 한다.
좋은 추억이었다. 진짜 좋은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