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사랑을 믿는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태민이를 보는 때가 아닐까. 사랑의 감정은 사람의 체온을 0.8도 정도 높인다고 한다. 칼바람 부는 매서운 겨울, 무언가를 사랑하는 힘은 추위를 조금 더 순조롭게 견딜 수 있게 만든다는 거다. 인생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아이돌, 그것도 14년 차 그룹 ‘샤이니’였다. 샤이니를 보면 광대가 조금 올라가고 몸이 조금 더워지는 거 같다. 이게 바로 사랑의 효과?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네 명 중에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아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태민이었다.
태민이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우연히 솔로 정규 3집 <이데아> 무대를 봤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허허 이 친구 보게, 참 잘하네’ 정도의 감정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나를 ‘태민 감옥’에 가둔 건 다름 아닌 알고리즘. 유튜브는 ‘이거 봐. 태민이가 무대 밑에서는 또 굉장히 귀엽다?’라며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정확히 3개월 뒤, 세 번째 미니앨범으로 돌아온 태민의 <Advice> 무대를 보며 '이러다가 집에 있는 물건을 몽땅 부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격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유튜브야 왜 그랬니, 아니 유튜브야 고마워.
태민이는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본업 존잘러’다. 거기다 SM엔터테인먼트 남자 아이돌 최초로 솔로 앨범을 냈다. 왜 조금 더 빨리 입덕하지 못했는지 슬프고, 좌절스럽고, 안타깝고, 한탄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원래 사랑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라구. 물론 나는 태민이를 아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찌 됐든 사랑은 사랑이니까!
처음엔 다들 그렇듯 나도 ‘입덕부정기’라는 걸 겪었다. 아이돌 덕질은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다. 내 새끼들로 날 유혹하며 어떻게든 지갑을 열게 만들려는 엔터테인먼트의 노골적인 상행위를 마주할 때마다 현타가 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치고 내 지갑은 비교적 쉽게 열리는 편이다.) 그래서 초반엔 ‘유튜브만 보자’ 고 다짐했지만, 그 마음은 얼마 못 가 무너져서 나는 브이앱을 다운받았고, Bubble이라는 메시지 서비스도 구독하게 되었다.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킨다고 했다. 덕질에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헐 미친 개예쁘다’ 싶으면, 사는 거다. 게다가 태민이가 군대에 간 이후 샤이니 멤버 키가 솔로 앨범을 A, B, C 버전에 테이프 버전까지 기깔나게 뽑아줘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나의 입덕부정기는 얼마 못 가 처참히 부서졌다고 할 수 있다.
샤이니 덕질은 나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머글 친구들에게는 샤이니에 대한 나의 애정을 조금 자제해서 드러내려고 노력 중이지만, 샤이니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붉어지고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는 이 오타쿠력은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정한 친구들은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라며 나를 다독이곤 한다.
또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일곱 살 어린 동생에게 ‘문찐’이라며 놀림당했던 나는 이제 동생과 30분 정도는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 관해 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의 따스함을 누리고 동생과 격조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준 이 영광을, 군복무중인 이태민 군에게 돌린다. 태민아 부디 건강만 해다오. 네가 샤이니로 돌아올 때까지 지갑 잘 지키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