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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May 16. 2022

인생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과제로 제출한 인생드라마 감상평.




‘산다는 건 참 힘든 거구나.’

고아에 미혼모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살인의 위협까지 받는 동백이를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동백은 만사를 작파하고 몸져누워있지 않는다. 피하고 도망가지 않는다. 자꾸 각성하고, 결심하고, 한 판 붙어보려 이를 악문다. 그리고 그런 동백의 곁에는 무한 지지를 보내는 용식이와 옹산의 식구들이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 포기하고 싶어진 이들에게, 편견에 둘러싸여 온 수많은 동백이들에게, 그래도 인생은 한 번 살아볼 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냐는 묵직한 위로 하나를 던진다. <동백꽃 필 무렵>을 인생드라마로 꼽은 가장 큰 이유다.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 “동백이가 나 같아서”]     


<동백꽃 필 무렵>의 16부를 요약하면 한 마디로 ‘동백이 생존기’다. 동백이는 잘 살고 싶어 한다. 옹산에 정착하고 싶어 하고, 아들 필구를 잘 키우고 싶어 하고, 또 그냥 목숨을 부지하며 생존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런 동백이를 동네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난 필구 아빠 종렬이, 잡히지 않은 살인마 까불이가 방해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욕심 많은 주인공도 아니고 그냥 시골 마을에서 애 하나 키우며 잘 살겠다는 소소하고 현실적인 꿈 좀 꾸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세상이 동백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바로 이 포인트가 녹록지 않은 삶을 사는 시청자들이 동백이에게 마음을 내어준 대목이라 생각한다. 기를 쓰고 살아가려는 동백이가 꼭 자신과 같아서.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들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동백이를 응원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멜로 휴먼 드라마의 메시지는 비슷하다. 결국 사람 간의 관계가, 애정이, 삶의 희망이라는 걸 전한다. <동백꽃 필 무렵>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어떤 캐릭터가 무슨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캐릭터가 가진 환경과 처한 상황이 현실적일수록, 캐릭터가 마주하는 갈등이 내가 느끼는 갈등과 비슷할수록 더 큰 공감을 일으킨다. <동백꽃 필 무렵>의 테마는 그런 면에서 탁월했다. 사랑받지 못하고 큰 어른을, 아이 키우느라 마음에 대못 박히는 부모를, 사회의 편견과 범죄의 두려움에 떠는 여성들의 마음을 얻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까불이 찾아라다양한 장르적 연출이 높인 흥미도]     


휴먼과 멜로,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데도 이질감이 없었다. 첫째로 ‘동백이 생존기’라는 테마에 잘 들어맞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범인 잡기에 시청자들을 참여시키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방영 당시 시청자들은 까불이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양한 장르적 시도와 연출이 좋았다. 특히 누군가의 시신을 옮기는 1화 오프닝 장면이 <동백꽃 필 무렵>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까불이는 이 드라마 테마에 종지부를 찍는 확실한 소재였다. 까불이와 동백의 대립 구도가 더 강해질수록 극의 긴장도는 높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화에서 동백이 까불이의 머리를 맥주잔으로 휘갈기면서 <동백꽃 필 무렵>의 주제가 드러났다. 용식의 대사처럼, “동백이는 동백이가 지킨다”는 거다. 이 드라마에서는 모든 장면이, 모든 대사가, 그리고 모든 연출이 “동백이는 동백이가 지킨다”라는 결말을 향해 달렸다. 이 드라마가 탄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시골, 가족, 힐링... 뻔한 요소로 이끌어낸 특별함]     


<동백꽃 필 무렵>이 방영되는 시점에는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시골보다는 도시를, 약한 캐릭터보다는 강한 성격의 인물을, 잔잔한 힐링과 위로보다는 한 눈에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드라마들이 많이 방영됐다. 그래서 시골, 가족, 힐링 드라마가 나온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았다. 뻔한 교과서 같은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올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이미-많이 본 이야기라고 치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선택한 수많은 이들은 ‘이야기의 힘’을 믿었으리라 생각한다. <동백꽃 필 무렵>은 프로듀서로서 눈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이기도 하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끌어내는 건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몫이니 말이다.     


[편견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다]     


<동백꽃 필 무렵>에는 술집 여자도 나오고, 미혼모도 나오고, 동네 아저씨에게 주접을 당하는 젊은 여자 이야기도 나온다. 애를 버려야만 했던 엄마도, 혼자 억세게 아들을 키워낸 엄마도, 남편 잡는 억센 동네 아줌마도 나온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파란만장한 여성들의 삶이다.     


이 드라마에서 단연 인기를 끈 건 동백이와 용식이의 러브스토리였지만, 그것 못지않게 극 중 여성들의 장면과 명대사들이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옹산은 여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땅 같았고,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땅 같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렇게 다양한 서사를 가진 여자들이 깊이 있게 다뤄진 적 있었을까. 특히 술집 여자 출신의 향미 캐릭터가 옹산에서 사랑을 알지만, 마지막에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이런 시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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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위로와 행복을 나도 남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스친 생각 덕분에 이 자리에 오게 됐다. 그래서 휴머니즘이 있는, 사랑을 믿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라는 동백의 물음에 “그렇더라” 하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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