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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Mar 14. 2022

이야기로 만들면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아빠는 종종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아빠가 중학교 때 할아버지가 이랬고, 고등학교 때는 이랬단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아빠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면 울컥하면서도 괜히 좋았다. 존재는 희미해지고 사라지는데 사람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는 계속 남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사람을 위로할 때가 있다.


사무치게 아픈 경험도 그걸 이야기로 만들면 견뎌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자전적인 소설을 쓰고  노랫말을 지어 부르고 글을 쓰나 보다. 자신을 대입하기도 하고, 자신이 창조한 누군가를 대입하기도 하면서.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두어 달간 인물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특히 좋았다. 모든 희로애락이 '

그냥 산다는 것' 같아서. 그게 위로가 되어서 자꾸 봤다. 사랑에 실패한 인물과 함께 울, 가족에게 상처받는 인물을 안타까워하고, 곤경에 빠지는 인물을 위로하고, 희망을 찾는 인물과 함께 희열을 느끼면서. 그게 내가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방법이었다.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지만 꺼내지 못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한 번 스친 불꽃을 다시 꺼뜨릴 수는 없었다. 무서워서 도전해보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수업을 신청하고 처음으로 글을 썼다.


여기저기 비약이 많은 초보자의 스토리라인이지만, 수업에서 내가 만든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걸 느꼈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이내 화합하는 과정 속에서 두 인물은 내가 되었다가, 당신이 되었다가, 다시 내가 되기도 했다. 분명 이 세상에 없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내 안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또 다른 나였으니까.


이야기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을 재현하는 것만이 위대하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만들면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사실을 재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아픔, 너의 아픔. 그 결여와 결여가 만날 때 분명 견뎌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위로가 나에게 또 다른 꿈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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