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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Apr 06. 2020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글을 쓰는 이유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정희진의 글쓰기 1,2 세트로 나왔다고 해서 두 권을 함께 주문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1권을 읽고 좋으면 2권을 사려고 했었는데 그냥 잔말 말고 두 권을 같이 시켰어야 했었다. 아. 기대를 안고 책을 주문했는데, 어쩜 기대한 것 이상으로 좋았다. 인스타그램에도 썼지만 정희진 선생님의 글을 볼 수 있는 세대여서 감사하다. 일단 책의 표지나 디자인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 쓰는 여성의 모습이 제목과 어우러졌다. 나는 책 뒷면을 보면 책을 미리 들춰보는 것 같아서 최대한 아꼈다가 보는 편이다. 책을 웬만큼 읽은 뒤, 내가 뽑은 몇 줄과 뒤 소개 글이 맞닿아 있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줄을 치고 사진을 찍고 난리를 친 문장이 뒤에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 문장은 아래에서 소개하겠다.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다룬 책인 줄 알았는데 서평 책이었다. 책 한 권에 63권의 책이 담겨있다. 두 장도 채 안 되는 분량에 책 한 권이 담겨 있다. 각 장은 책의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하진 않는다. 다만 각 책의 핵심 내용이 쓰여 있고 그 내용이 정희진 씨의 글과 연결된다. 정희진 씨가 세상을 보는 관찰력과 통찰력이 책 한 권과 함께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독자 입장에서는 1석 2조다. 정희진 씨의 글도 보고, 책 소개도 받을 수 있는 거다. 2편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1) 윤리학과 정치학은 글쓰기의 핵심이다 / (2)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이다 / (3)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목차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한 줄을 꼽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데, 이 책은 한 줄을 고를 수가 없었다. 소설이나 에세이류는 비교적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 눈에 잘 보이는 편인데, 이런 책의 경우 한 줄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내가 정희진 선생님 책에서 한 줄을 고르다니.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감상평을 쓰려고 이렇게 책을 들췄으니 이 책의 '메인'격인 문장을 소개할까 한다.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을 내신 이유. 그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 그 철학이 담긴 문장이다.


머리말 '나의 몸, 나의 무기' p. 14

1. 정희진 선생님은 품위 있게 싸우기 위해 글을 쓴다. 약자들은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남들은 없되 그에겐 있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적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 사회적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대학 때 존경하던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조언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품위를 잃지 말라는 거다'. 그 말이 겹쳐진다.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할 줄 아는 게 생각보다 없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자꾸 쓰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몇 편의 글이 쌓여 있는 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글들은 대부분 세상을 향하는 말이다. 나에게도 글이 무기로 쓰였으면 좋겠다. 세상에 닿을 글을 쓰고 싶다. 세상을 위한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짓기, 글쓰기' p.90

2. 박수민의 <연암 박지원이 글 짓는 법>을 발췌한 부분이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해서 우유부단하기만 한 글을 어디다 쓰겠는가" 글의 목적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문장이다. 모든 글은 사람에게 닿기를 욕망한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글. 그것이 모든 글쓴이들의 바람이 아닐까.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 p.66


3. 정희진 선생님은 '사악한 다수'가 점령해 버린 대한민국에서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고 했다. 글이 그의 유일한 무기인 만큼, 선한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거다. 이 책은 사회 전반을 두루 다루고 있다. 정치, 성적 소수자, 미디어, 정치적 올바름, 종교, 전쟁 등 나오지 않는 이슈가 없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지막 챕터 3장 <글쓰기의 두려움과 부끄러움>이다. 전체가 세월호 이야기다. 정희진 선생님은 계속해서 세월호에 대해 쓰셨다. 그걸 다 읽어 내려갈 즈음이 되어서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됐다.


한 명의 사람이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진상규명을 위해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 그 슬픔을 이제 그만 떨쳐버리고 싶은 순간이 와도,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 그 마음들은 정희진 선생님의 글 속에 담겨 있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서 글이 발현된다는 걸 믿는다. 글쓰기가 나의 만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길 간절히 기도한다.


정말 이 책을 권한다. 나도 어서 2편을 읽고 두 번째 감상평을 쓰고 싶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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