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시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폴은 로제에 대한 갈망으로 바스러져갔다. 폴은 매일 밤 이미 그가 몇 명의 여성과 함께일 것임을 알면서도,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다림과 섭섭함에도 관성이 자라 갔다. 이미 그렇게 된 지 몇 해가 지났다.
폴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여있을 무렵,시몽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시몽은 폴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로제와는 달랐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시몽은 열정에 가득 차 있었지만 폴은 받아들일 힘이 없었다. 짐작건대 종속된 자아로 살아가는 게 편했던 것이리라. 실패의 경험으로 무기력해진 폴에게 도전과 결단은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었다.
이 책이 매우 현실적인 이유다. 폴은 끝내 로제를 선택했으므로. 폴은 그 익숙하고 고루한 동굴에 제 발로 들어갔다. 밤을 채우기 위해서만 폴을 찾는 로제의 잔인함에 스스로 묶였다. 폴이 시몽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로제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벽을 깨지 못한 것일 뿐.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상상을 한다. 내가 한정지은 내 경계는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든 그 물음에 예스를 외치고 싶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대답들이 모여 전혀 다른 결말이 맺어지겠지. 아직 폴에게도 기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