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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Nov 28. 2020

친한 사이일수록 단톡방을 없애야 하는 이유

친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없앴다.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단톡 중심의 소통 방식은 서로를 안일하게 했고 무던하게 만들었다.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느슨한 안전장치에 관계를 내맡겼다. 몇 마디 문자와 이모티콘들로 친구의 삶을 짐작했다. 친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단톡방을 없애고 우리의 관계망도 새로워졌다. 물론 약속을 잡을 때마다 일일이 개인적으로 연락해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변화들이 찾아왔다.

1. 개인 연락이 늘었다. 거리가 멀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와는 통화하게 됐다. 예전에는 다섯 명이 함께 맺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친구 한 명 한 명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친구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 애틋함이 생겼다. 하루 종일 서로가 어떤 삶을 사는지 전혀 모르니 한 번씩 만날 때 할 말이 넘쳐 났다. 서로 하고 싶은 말들을 쌓아두었다가 만나면 회포를 풀고 있다. 어쭙잖게 서로의 삶을 아는 체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3. 단편적인 감정 노출이 줄었다. 나는 주로 단톡방에 감정을 많이 노출하는 편이었다. 어떤 감정이 생기자마자 그걸 친구들에게 발화해버리곤 했는데, 단톡방이 사라지니 그간 내게 일어난 일을 곱씹고 소화할 시간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람은 평생 봐도 모른다. 지나치게 편리한 SNS 세상은 내게 친구들을 안다는 착각을 줬다. 단톡방이 사라진 지금, 나는 소중한 사람을 아는 것만큼 부지런해야 할 일은 없다는 걸 안다. 사라진 단톡방으로 인해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얼마 전 같은 이유로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을 삭제했다. 내가 맺어 온 관계들이 인스타스토리와 같이 느껴졌다. 24시간 만에 사라지는 휘발적인 매개. 겨우 그걸로 상대방의 삶을 아는 체하고, 내 삶을 전시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다. 안전한 관계망으로부터 탈피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팔로워들을 모두 삭제할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말 내 곁에 남아있는 이들이 없을까 봐서. 두려움의 크기가 커질수록 SNS 계정을 삭제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사람을 적당히 모르는 채로, 타인에 대한 궁금증을 간직한 채로 일단 살아보려 한다. 이 관계가 내게 새로운 안정감을 선사해줄 거라는 기대를 안아본다. 개인 연락은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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