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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Dec 10. 2020

또다시 시작된 목발 생활

경비골 골절 철심 제거 수술

숨 크게 들이마시세요-
목 끝까지 약의 기운이 올라왔다. 정신이 노곤해지면서 몸이 굳어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 빠져드려는 순간, 생각했다. 이 짓을 또하고 있다니.

어제 경비골 철심 제거 수술을 받았다. 1년 6개월간 내 몸에 있던 철심과 나사들이 제 몫을 하고 드디어 나갔다. 튼튼하게 뼈가 붙을 수 있도록 도와줬던 아이들이다. 의사선생님은 아주 작은 나사들까지 다 찾아서 제거했다며 흡족하게 웃었다. 수술이 잘 된 모양이지만,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조금 미웠다. 엉엉 난 아프니깐.

항생제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다. 예전에 수술할 때는 안 그랬는데 팔에 꽂혀 있는 대바늘 속으로 항생제가 울컥울컥 들어갈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몽롱한 정신으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아주 고역이다.


고맙게도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프다는 엄살을 다 받아준다. 팔이 너무 아파 들지 못하겠다고 하니 약이 들어가는 속도를 줄여줘 이렇게 폰으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줬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그랬더니 새벽에도 두어 번씩 나를 잠에서 깨워가며 상태를 체크했다.

앞으로의 일은, 사실 모르겠다. 수술부위를 소독하려고 붕대를 풀었더니 발목부터 정강이까지 스테이플러? 뭐라 그러지, 여하튼 아픈 쇠가 박혀 있었다. 이걸 뽑는 건 또 얼마나 아플지, 피주머니가 달랑달랑 다리에 달려있는데 이건 언제 뽑는 건지 또 드레싱은 얼마나 자주 하러 와야 할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다.

살갗 안에서의 온갖 고통을 겪다 보니 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안 아프게 느껴진다. 눈 한 번 딱 감고 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져 있겠지. 지금이 벌써 12월인데 뭐. 시간은 어찌어찌 간다. 내 다리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상처를 볼 때마다, 그냥 스물네다섯 살의 내가 겪은 영광(?)의 상처라 생각해야지. 이 유난스러운 날들이 언젠간 약이 되리라.

이번 주 필기시험을 보러 가지 못할 것 같아서 서글프다. 항생제 때문에 계속 누워 지내고 아직 목발을 짚지도 못하게 하니, 시험은 꿈도 못 꿀 듯하다. 무엇이 우선인지 모르겠다. 시험인지, 내 다리인지. 사실 정답은 다리인데 열 번 고민하면 그중에 서너 번은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을 일으켜 공부를 하려 하다가 글자에 머리가 아득해져 관뒀다. 기회를 놓치는 건 무지 아쉬운데, 일단 다리가 너무 아프다.

정말 웃기고 초딩같게도 나는 1차원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속이 울렁거리지 않게 해 주세요. 실밥 뽑을 때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필기시험이 한 주만 늦춰지게 해 주세요. 다리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이런 것들. 난 이런 결론중심적인기도를 드릴 때마다 신께 죄송스러워했는데, 몸이 아프니 별 수 없다. 일단 안 아프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제일 먼저 나온다. 이렇게라도 말을 거는 걸 나쁘게 생각하시진 않겠지.

엄마가 옆에서 고생이다. 나는 누워 지낼 침대라도 있는데 옆에서 앉아만 있는 엄마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마음껏 엄마를 부려먹을 수 있는(?) 시간이니 즐겨야지! 엄마가 내 손과 발이 되어주어서 좋다. 흔치 않은 기회다. 얼른 포항에 가고 싶다. 소파에 누워서 허리가 아플 때까지 티비를 보고 싶다. 배가 빵빵해져서 숨을 못 쉴 때까지 엄마 밥을 먹고 싶다. 연말연초엔 그렇게 풍족하게 지내야지.

요즈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고 쓰고 싶은 글이 많아 메모장이 무거워졌다. 매일 책 읽고 글 쓰며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야지. 퇴사 후 나에게 주는 선물이며, 2021년의 도약을 향한 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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