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실 608호 할머니의 손자가 병문안을 온 모양이었다. 갓 유치원을 졸업했겠다 싶은 앳된 목소리가 병실을 메웠다. 손자는 할머니가 밥은 잘 드시는지 잠은 잘 주무시는지 걱정했다. 할머니는 연신 “괜찮다 괜찮다”하며 “네 할아버지가 더 걱정이다” 하셨다. 밥솥도 만질 줄 모르는데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모르겠다는, 여자들이 으레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자 손자가 당돌하게 소리쳤다. "할아버지 밥 할 줄도 몰라요? 유튜브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맞다. 모르면 배우면 되는 시대, 없으면 찾으면 되는 시대. 그리고 내 밥은 내가 차려 먹을 줄 아는 시대가 도래했다. 적어도 손자가 자라는 세상에서는 밥 정도는 스스로 차려 먹을 수 있는 남편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지금은 아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1주일동안 남편들에게 전화 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루에 세 번씩 들어야 했다. 아픈 몸으로 당신들 끼니도 겨우 챙기면서 남편들 밥 못 먹을까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내 곁에서 나를 돌보러 온 엄마도 수차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냉장고 몇째 칸에 무슨 반찬이 있는지까지 설명했다. 그런데도 몇 분 뒤 가족 톡방에는 햄버거 사진이 올라왔다. 엄마는 “기껏 반찬 넣어 놓고 왔는데도 배달음식 사 먹으니, 집을 비울 수가 없다”며 한 소리 했다.
남편들은 왜 밥을 못 차려 먹을까? 배우고 해결될 문제면 좋겠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밥 짓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탑재되지 않은 까닭이다. 저녁엔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장을 보고, 가족들 먹을 시간을 계산해서 밥을 짓고, 요리하고, 먹었으면 치우는 행동 요령이 없다. 한평생 차려주는 밥을 먹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할머니는 당신의 남편이 밥 지을 줄 모른다며 걱정했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밥솥 사용법을 알 가능성이 높다. 하루 세 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던 병실 안 여성들도, 남편이 밥을 먹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단지 본인이 차리는 것만큼의 알찬 식탁을 구성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죄책감과 책임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평생 타인의 밥을 지어온 여성들이 흔히 갖는 부채감이다.
아내들이 남편의 밥을 차리는 동안, 남편들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세계를 경험한다.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나름의 취미생활도 즐긴다. 안타깝지만 아내들은 가족들 밥상 걱정에 하루를 쏟곤 한다. 나의 엄마는 장난스럽게 “병원에 오니 밥 걱정은 안 해서 좋다”며 진심을 내비쳤다. 그의 삶은 밥 짓기로 시작해 상 치우기로 끝난다. 집안을 돌보아야 한다는 무거운 희생과 사명감에 눌려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10년간 베이비시터로 일하신 나의 이모할머니는 최근 무릎 수술하라는 의사의 권유에도 선뜻 입원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이 없으면 "이 집도 문제고 저 집도 문제"라서 그렇단다. 여성의 삶은 타인에 대한 돌봄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돌봄 노동의 대가는 경제적 가치로 매겨지지 않는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해야 그나마 0점. 여성이 쉬는 순간 집안 꼴은 마이너스로 치닫는다. 당신 몸이 부서져라 한 평생 밥을 차리면서, 정작 자아는 잃어가는 여성들이 많다.
이제는 남편들이 스스로 밥을 차려 먹어야 되는 시대가 왔다. 그래야 엄마들이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도 알고, 취미도 가질 수 있다. 왜곡된 사명감 속에 여성이 자신을 놓치지 않도록, 남편들도 밥상 정도는 차릴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이제 모르는 척 시치미 뚝 떼고 외쳐보련다. “밥 짓는 방법도 모르세요? 그거 유튜브 치면 다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