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돈이나 시간이 많은 애들이 꾸는 거야”
최근 보기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니&조지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직 시리즈를 끝까지 보지 못해 무슨 맥락인지는 몰라도, 폭력으로 얼룩진 유년기 시절을 보내고 싱글맘이 된 조지아가 딸 지니에게 들려주는 말이니 대강 알 만하다. 조지아는 딸이 경험해보지 않은 어두운 자신의 과거까지 자꾸 딸에게 물려주려 한다. 그러나 엄마의 충고에도 지니에게는 자꾸 가슴이 두근댈 만한 꿈이 생긴다. 지니는 그런 엄마와 긴밀하게 지내면서도 정서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려는, 건강한 딸이다.
나는 성직자의 자녀로 살며 풍족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부모에게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들어본 적 없다. 꿈이 있으면 두 날개를 펴고 훨훨 펼치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이제는 안다. 내게 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부모가 어떻게 살았을지를 말이다. 조지아의 대사는 안타깝고 애석하게도, 사실이다. 세상을 조금 알아버린 나는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
7살 어린 동생 덕에 조금 일찍 ‘보호자’ 행세를 하게 된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자꾸 동생을 대하게 된다. 그래서 동생에게 꿈이 생겼다고 했을 때, 마음이 쿵했다. 그 ‘쿵’은 분명 기쁨이었으나 약간의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동생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영화니, 너 예술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중에 대학 가서 천천히 생각하는 게 어떠니. 따위의 (내가 경멸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나는 기어코 그 말들을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너랑 진짜 잘 어울려.”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동생은 ‘꿈 선포’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 시작했다. 새벽에 “나 한예종 갈 거야”라는 톡을 보내 놓는가 하면, 최근 영화 <미나리>를 보고 난 후에는 엄마 아빠를 앉혀놓고 영화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더란다. 그래도 고3인데 입시학원은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나의 제안에 온라인 강의를 듣게 됐는데, 그곳에서는 ‘질문왕’이 되어있다고 한다. 자신의 글에 좋지 못한 평가를 들은 날이면 이를 갈며 밤새도록 글을 쓰며, 좋은 평가를 들으면 그날 하루는 수다쟁이가 되어 집안을 시끄럽게 뒤집어 놓는단다. 모르긴 몰라도 동생이 꿈에 진심이 되어버렸다는 건 사실인 듯하다. 기특하고 애틋하기 그지없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안다. 물론 동생이 나중에 가서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도 꿈이 있다면 겨우 돈 같은 것들이 동생의 꿈을 막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혹여나 동생이 영화감독이 아닌 다른 진로를 택하더라도, 그것이 절대 돈 때문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을 위해 내가 돈을 많이 벌거라던가, 훌륭한 누나가 되겠다는 다짐은 않겠다. 결국 그 말 자체가 돈에 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꿈이 항상 더 크다. 꿈은 분명, 돈보다 더 훌륭하고 위대하다. 난 얼마나 가졌는지를 떠나서 모든 사람의 꿈이 이기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세상은 언제가 꼭 올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동생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더라도, 결코 미안하거나 아쉽지 않을 예정이다. 왜냐면, 간단하다. 꿈이 더 크니까. 조지아의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꿈은 돈이 적고 많음을 떠나 모든 걸 초월하는 엄청난 힘이다. 일단 그렇게 믿으련다. 뭣도 없으면 그렇게 믿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동생도 그렇게 믿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