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정읍에 놀러 가려 했는데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해져서 취소했다.
'엄마가 너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랬는데, 너 못 온다고 말하니까 되게 아쉬워하시더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포항, 그리고 그다음엔 정읍을 떠올린다. 언제든지 와서 쉬고 가라던 친구 가족들의 그 말을 어쩌면 그대로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무 살에 만나 첫 학기에 함께 방을 쓴 친구는 언제나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만 한다. 6년을 봤으면 실망도 하고 단점도 알만큼 알았을 텐데.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신뢰해주는 친구다. 전적인 신뢰를 친구에게 받는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근데 그 애는 내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또 내가 잊고 있었던 내 순간들을 꺼내 준다. 너 이거 진짜 잘하잖아, 너 그때 그 일 재밌게 했잖아, 내 빛나는 순간을 기억해주며 자꾸 나를 일어나게 한다.
사람들의 안부를 먼저 묻는 타입인 나는 가끔 그게 서운하고 피곤할 때가 있다. 정작 내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는 걸 알아챌 때다. 근데 그럴 때 친구는 귀신같이 그 순간을 캐치하고 전화를 걸어온다. 서로 말하고 듣는 비중이 정확하게 반반일 때, 마치 매뉴얼이 있는 듯 서로의 대화 방법이 비슷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이 찾아온다. 나의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다.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저번 주도, 어제도, 오늘도 아니 어쩌면 매일매일이 그렇다. 참다가 참다가 그 결심을 실천하게 되는 날, 난 이왕이면 정읍으로 가려한다. 도망가자고 했다가 결국 함께 살아내자고 말하는 선우정아의 노랫말처럼, 친구는 내 도망길에 기꺼이 동행해줄 사람이지만 결국 또 살아낼 힘을 줄 거기 때문에. 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게 될 거라 자부한다.
친구는 6년째 내 글을 읽으면서도 언제나 재밌고 술술 읽힌다고 칭찬한다. 나보다 더 재밌게 쓰고 잘 쓰는 사람이 어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니 글은 참 좋아.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 사실 오늘은 너무 졸려서 눈꺼풀이 무거운 날인데. 너에게 읽힐 생각에 기뻐 몇 자를 적어본다.
나도 너처럼 따스하게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고 싶고 너의 부모님 같은 어른으로 성장하고파. 매일 도망가고 싶은 날들의 연속인데 말이지, 정읍에서 느꼈던 그 속까지 뜨끈한 충만함의 추억으로 또 살아가. 가을바람이 솔솔 부는 날 정읍으로 갈게. 거긴 나의 리틀 포레스트, 위로의 공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