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아까운걸?
나름 괜찮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심사위원들은 아니었나 보지 뭐. 그러라 그래~~~
문제: '관종의 ____'라는 제목으로 자유롭게 서술.
'암호화폐, 힙, 새벽배송, 조직, 독점'이라는 키워드 5개 중 3개를 본문에 포함하여 서술하시오.
시간: 60분, 1200-15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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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의 죽음>
관종은 욕을 먹었다. 한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 관종 맞아요"라고 인정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SNS에 자극적인 사진을 올려 지나친 관심을 모으려 한다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그가 자신을 향한 조롱을 인정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웬일인지 '관종'은 그때부터 '힙'한 단어가 됐다. 핵심은 당당함이었다. 남의 편견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관종은 힙이 됐다. 생각의 전환이었다.
소셜커머스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쿠팡도 이와 같은 생각의 전환을 꾀했다. 신분이 사람을 나누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에는 땀과 흙이 묻은 노동을 경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양반은 글을 쓰고 천민은 노동했다. 신분제도가 철폐된 이후에도 남아 있던 편견의 잣대는 오늘날 몸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향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환경미화원이 되기 위해서도 시험을 치러야 하는 나라"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환경미화원같이 몸을 쓰는 일을 하기 위해 머리를 쓰는 상황이 비상식적이라는 의미였다. 쿠팡맨의 등장은 터닝 포인트가 됐다. 쿠팡은 배달 노동자들을 직고용하고 '쿠팡맨'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주 52시간 노동시간도 철저히 지킨다고 홍보했다. 쿠팡이 배달 노동자들을 대우하자 쿠팡도 착한 기업 이미지라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배달 노동자를 향한 소비자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SNS에는 쿠팡맨의 센스와 친절함이 하루종일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배달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얼마동안 쿠팡은 소셜 커머스계의 힙스터가 됐다. 배달 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월급을 지급하고 후하게 대우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쿠팡맨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쿠팡맨'이라는 지위를 얻은 순간부터, 그들은 더이상 힙스터로 분류되지 못했다. 힙스터의 이면에는 과도한 노동과 기업의 갑질이 숨어 있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배달 물량이 많아지며 배달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늘었다. 쿠팡은 일찍이 '새벽배송'을 시작한 기업이다. 새벽배송을 맡은 노동자들은 주로 밤에 까대기하고 물건을 싣고 날랐다. 밤 노동은 낮시간에 노동하는 것보다 2배 이상 큰 피로감을 가져다 준다. 과로사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달 노동자들이 쿠팡을 포함해 작년에만 15명 이상이다.
나이스한 쿠팡맨이 다시 관종으로 불린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쿠팡맨들을 포함한 배달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거리로 나섰다. '노동시간을 지켜달라', '수수료를 올려달라'는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요구였다. 그런데 라이더유니온 시위 기사 밑에는 '관종들이라서 시위한다', '못배워서 배달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는 등의 악플이 달렸다. 잠시나마 긍정적 이미지를 얻었던 배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자, 이들은 다시 관종이 됐다.
쿠팡은 배달 노동자들의 죽음을 '과로사'로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배달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은채로 새벽배송의 종류를 더 늘리기만 했다. 명백한 책임 회피다. 무늬만 힙스터인 대기업의 뒤로, 오늘도 수많은 관종들이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