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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Oct 19. 2021

운전

운전면허 학원 등록을 서두르게 된 건 채용공고 하단의 ‘운전면허 소지자 우대’ 문구가 결정적이었지만, 어느새 그 목적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버렸다. 지금은 자격증보다도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꿈에 잔뜩 부풀어 있다.


유달리 운전하는 여자선배가 없었다. 학교에선 엠티를 갈 때나 가까운 바다에 놀러갈 때 남자 선배들이 차를 빌렸고 당연하듯 난 뒷자석에 몸을 실었다. 놀러가자는 제의도 남자들이 했고 차도 남자들이 빌렸고 운전도 남자들이 했고 그날 스케쥴도 남자들이 짰다.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당연히 운전은 남자의 몫이라고만 생각했을까? 한 번도 운전석에 앉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따뒀더라면 친구들이랑 같이 바다도 보러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녔을텐데. 난 정말 오빠들만 운전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참 흔하디 흔한 자격증이지만, 내게는 운전이라는 건 새로운 세상이라 설레고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학과교육도 들었고 기능연습도 했다. 조금 무서웠는데 선생님이 차분하고 친절하게 너무 잘 가르쳐주셨다. 나같으면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차 때문에 지루하고 졸렸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프로페셔널..하셨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수능 끝나고 땄으면 이렇게 쉬는날 면허 따러 오지 않았어도 되지 않겠냐’는 선생님 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었다면 난 내가 번 돈으로 학원에 등록할 수도 없었을 거고 기쁨도 덜했을 것 같다. 뭐든 사람은 자기가 실행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움직이게 되는 법이니까. 소소하고 재미난 체크리스트를 채워가는 기쁨은 아마 지금밖에 누리지 못했을 거다.


당장 차를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는 없지만, 만약 차가 생긴다면 친구들을 태우고 산이나 바다로 놀러가고 싶다. 휴게소에서 소떡소떡도 사먹고 고속도로에서 노래도 틀고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편하게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다. 이제 막 도로주행 연습을 하는 내가 이런 꿈을 꾸는게 조금 우스운가? 뭐 우스울 게 있을까. 이런 행복한 상상이 모여서 또 에너지가 되는 거니까. 조만간 운전면허를 꼭 따고 돌아와 또 글을 남기겠다.



10월 30일, 운전면허를 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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