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항해

by 임용철


누나는 익산에서 올 때 들고 왔던 캐리어를 챙겨 방에서 나왔다. 하루 앞당겨 익산으로 돌아갈 모양이었다. 카키색 반바지에 검정 글씨로 레터링 된 회색 라운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ㅡ인영아 누나 간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밑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에 차려놓는 중이었다.

ㅡ누나 내일 갈 거라며....

ㅡ그냥 오늘 밤에 가려고.

ㅡ다음에 익산에 오면 누나 다니는 학교 구경시켜 줄게.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대문 밖에서 자동차 한 대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ㅡ이리 와 인영아. 누나가 돌아서서 팔을 벌렸다. 나는 누나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나를 안아주고는 뺨에 입을 맞추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은 어느 순간 누나의 입술에 닿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입술을 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려고 누나의 캐리어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을 때 뒷집 정민이네 공터에 경찰차가 주차돼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파출소 장 순경이었다. 3년 전에 아빠를 따라 그의 결혼식에 간 기억이 있었다.

ㅡ안녕하세요. 장 순경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누나는 옆에 서 있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ㅡ아빠가 오늘 또 낮술 드시고 택시를 몰다가 적발됐지 뭐야. 마땅히 연락할 보호자가 있어야 말이지.

ㅡ아빠가요? 누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ㅡ남동생이 있었나?

ㅡ아니요. 강 이장님 막내예요.

ㅡ안녕하세요. 나는 적황색 선글라스를 낀 채 바짝 다가서는 장 순경이 불편했다.

ㅡ또래에 비하면 키가 좀 작네. 우유 좀 많이 마셔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난쟁이 똥자루처럼 작으면서.' 나는 키 작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경찰차 운전석에 오른 장 순경이 운전석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ㅡ버스 타러 가는 길이면 내가 대야까지 태워다 줄게. 아빠 문제로 상의할 것도 있고.

ㅡ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ㅡ차 타고 나가면서 얘기해 줄 게.

누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경찰차에 오를지 말지 머뭇거렸다.

ㅡ인영아, 익산에 도착하는 대로 누나가 전화할게. 나는 그녀가 경찰차를 타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경찰차를 그냥 보내고, 이대로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서 좌석에 앉은 누나의 웃는 얼굴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싶었다.

ㅡ내일 아침 누나 만나러 갈게. 나는 경찰차 조수석에서 뒤돌아보는 누나를 향해 소리쳤다.


경찰차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공터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대문을 힘껏 닫았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마음이 불안했다. 책상 서랍 맨 아래 칸 깊숙이 넣어놓은 선데이 서울을 꺼냈다. 창고에 쌓아놓은 장난감을 찾다가 구석에 종이상자 안에 삐져나와 있는 잡지를 발견하고 서랍에 감춰 두었다. 발간한 지 십 년도 더 지난 잡지는 표지도 바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에 핀 곰팡내가 났다.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선데이 서울 잡지를 넘겼다. 온종일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달궈진 장판이 끈적거리며 몸에 달라붙었다. 삼각팬티 속에 성기가 방바닥에 눌렸다. 몸은 나른하고 마음은 울고 싶은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손을 포개고 턱을 괸 채로 잡지 맨 뒤편에 팔등신 백인 미녀들의 수영복 사진을 보고 있었다. 성기가 방바닥에 눌린 채로 몸을 위, 아래로 그리고 앞뒤로 천천히 활처럼 말고 움직이자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사타구니에 압박감이 전해질수록 그것은 풍선 인형처럼 멋대로 부풀어 올랐다. 아랫배에 더 힘이 들어가고 심장은 사타구니 주변으로 혈액을 펌프질 했다.


항구에 정박해 있던 인영 호는 닻을 올리고 출항을 시작했다. 건조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범선은 한 번도 항구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해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들고 타륜을 잡고 바람을 읽어 나갔다.

오렌지색 반팔 티셔츠 너머로 누나의 하얀 젖가슴이 보였다. 스쿠터 뒤에서 밀착하며 전해졌던 부드러운 가슴의 눌림과 촉감을 기억해 냈다. 머리를 감겨주는 누나의 체취는 편백의 피톤치드 향처럼 마음을 진정시켰다. 돛을 펼치고 바람에 몸을 맡기자, 하늘 높이 날아오를 듯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처음으로 허락된 완전한 쾌락이었다. 출항했던 배는 바람이 잦아들어 돛을 내리고 항구로 돌아왔다. 속옷은 끈적한 정액으로 젖어 있었다. 어떤 냄새일지 궁금했다. 지난 6월에 아빠를 따라 벌초하러 갔을 때 하얗고 복슬복슬한 꼬리 모양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밤꽃 나무 향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