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목

by 임용철


율이 누나는 더위에 지쳤는지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오히려 찜통 같은 방안보다 평상이 더 나아 보이긴 했다.

ㅡ용택이 집에서 놀다 올 게 누나. 스쿠터도 돌려줘야 하고.

ㅡ그래, 더운데 대야까지 태워다 줘서 고마워. 오늘 성경 퀴즈대회도 잘했어.

누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스쿠터를 돌려 용택이 집으로 향했다. 다리 건너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용택이네 집이었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복순이 복실이 모녀가 알아보고는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댔다.

ㅡ용택아. 스쿠터 가져왔다. 큰 소리로 불렀는데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용택이 녀석 함께 놀기로 해놓고서 어디를 간 거야.' 용택이 방인 문간방을 열어보았지만, 방안에는 통기타와 기타 교본만 덩그러니 펼쳐진 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스쿠터를 개집 옆에 세워두고 대문을 나섰다.


다리 밑을 지나 수문 쪽으로 개울물이 흰 거품을 일으키며 콸콸 쏟아져 흘러갔다. 늦은 오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여름은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나는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대로 집을 나가 버릴까 싶었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아있는 한가로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낼까 궁리했다. 자전거를 타고 만경강까지 가서 참게나 잡아볼까도 싶었다. 그것도 귀찮으면 어제 사 온 민물낚싯대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떡붕어 여럿을 잡아볼까도 생각해 봤다.


우리 집 대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나는 목걸이에 매달린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에 혼자 있을 율이 누나가 대문을 잠갔을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우리 가족이 사는 안채가 있고 안채를 중심으로 기역 모양으로 창고와 바깥채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누나와 아저씨는 방 2개짜리 바깥채에서 살았다.

손재주가 있는 아빠는 바깥채 옆으로 별채를 손수 지으셨다. 별채는 아빠가 편백을 사다가 지은 것으로 여름엔 샤워장으로 겨울이면 사우나로 사용되는 건물이었다. 안채 화장실보다 넓어서 목욕하기엔 그만이었다. 특히나, 부모님이 논일이나 밭일하고 와서 더러워진 옷이나 양말, 장화를 벗고 씻은 후에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서 편리했다. 매년 초등학교 신체검사를 앞두고 누나는 씻기 싫어하는 나를 달래서 그곳에서 목욕시켜 주곤 했었다.


앞마당에 들어서자, 별채에서 샤워기를 틀어놓은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은 형 자취방에 들러 청소며 찬거리를 마련해 주시고 저녁을 먹고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실 터였다. 배 씨 아저씨는 오늘도 도박판을 기웃거리다가 술에 취해 기사들이 쉬는 휴게실에서 잠을 잘 것이다. 집안에는 율이 누나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과 흥분이 밀려들었다. 나는 안채 현관문으로 다가가려다가 마당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발걸음을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발끝은 현관이 아닌 엉뚱한 길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시골 농가에 몰래 들어와 말린 고추나 쌀, 개를 훔치러 온 좀도둑처럼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숨죽여 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낼수록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노란색 개나리꽃에 앉아 있는 배추흰나비를 잡을 때처럼 별채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맙소사, 너 지금....'

샤워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하나 뗄 때마다 신경은 온통 별채 출입문에 닿아 있었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을 걸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새 별채 앞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몸을 숙이자 노송나무의 피톤치드 향이 코를 자극했다. 나는 노송나무 널빤지의 옹이가 떨어져 나간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그 작은 구멍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율이 누나를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었다. 밤하늘에 고고하게 떠 있는 둥근 보름달을 볼 때 느꼈던 기분과도 흡사했다. 밝게 빛나는 달이란 구멍을 통과하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개의 샤워기가 보였고 누나는 왼쪽 벽면에 설치돼 있는 샤워기를 사용 중이었다. 어깨선까지 자라있는 머리를 샴푸로 감은 후 씻어내고 린스로 다시 헹구고 있었다. 그리고 바디워시 거품을 품은 망사타월로 목과 젖가슴과 겨드랑이 팔과 배를 순서대로 문질렀다. 이어서 사타구니와 다리, 발등에도 거품 옷을 입혔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거품 옷을 벗겨내자, 주광색 조명 아래 누나의 탄력 있는 하얀 엉덩이와 젖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만화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길고 하얀 손가락에 들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몸의 물기를 닦아 나갔다. 나는 몸을 돌려 이번엔 노련한 경보 선수가 되어 잰걸음으로 현관 출입문 앞에 섰다. 누나가 샤워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현관 출입문으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ㅡ일찍 왔네? 누나는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큰 샤워 타월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ㅡ택이가 아빠 일 도와드리려 나가야 한대서...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ㅡ인영아. 오랜만에 누나가 시원하게 등목해 줄 게. 한낮에 돌아다녀서 땀 냄새 많이 날 거야.


샤워장 안에 아직 샴푸와 바디워시 향이 남아 있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기운이 감돌았다. 벽면 유리와 바닥 타일에는 물기가 깨끗이 제거돼 있었다. 나는 흰색 교회학교 단체 티를 벗어서 세탁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편백나무 벽채에 나 있는 구멍으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그녀는 손바닥에 샴푸를 덜어 내 거품을 내고는 머리를 북북 문질렀다.

ㅡ누나가 너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목욕시켜 준 거 기억하니? 나는 부끄러워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누나의 엄마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보호자인 배 씨 아저씨는 주로 버스 일이 끝나면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주말에는 누나가 교대로 병원에 다녀왔다. 우리 엄마는 누나를 친딸처럼 편하게 대해주셨다. 누나는 우리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ㅡ등목까지 하니까 시원하지. 씻고 누나 방으로 들어와. 머리 말려줄게.


잠시 후 누나의 방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속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등목을 했는데도, 금세 몸에 열이 달아올랐다. 샤워기 물을 틀어놓은 채 눈을 감았다. 조금 전까지 이 자리에서 샤워하던 누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물방울이 돼서 누나의 목덜미를 타고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지나 엉덩이 위로 흘러내리고 싶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등에 입맞춤하고 나서 누나를 꼭 안아 위로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