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랐다면 어땠을까
퇴사 후 1년을 넘긴 지금까지, 나는 한 순간도 '그' 회사를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처럼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타이밍의 문제였을 뿐, 어차피 나는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회사를 나오고 나니 후회되는 것은 퇴사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 때의 나는 괜찮아 보였지만 괜찮지 못했고, 번지르르해보여도 속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그렇게 만든건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
직장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말 그대로 그냥 직장인이었다. 직장인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도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서도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은 잘만 마셨고, 다른 사람들의 SNS나 쓸데없는 인터넷 글들은 꼼꼼히도 다 챙겨봤다. 그저 번 돈을 쓰는게 일상인 삶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목적과 계획없이 마치 경쟁하듯 비싼 물건을 사고, 때로는 별 의미없는 여행을 떠나고, 쓸모없는 작은 지출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했다. 결국 남는 것은 신용카드 명세서뿐.
지금에 와서 그렇게 쓴 돈이 아깝다거나 돈을 더 모았으면 좋았을 걸하는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더 많았으면 좋기는 했겠지만. 내가 제일 아쉬운 점은 그 때의 나는 그저 돈을 쓸 줄만 알았지, 그 소비를 댓가로 어떤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꼭 돈벌이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돈 내고 다른 무언가를 배우면서/소비한 것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서/수집을 하면서 등의 방법으로 어느 한 켠에 직장인이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에 가장 후회가 남는다. 언제라도 회사를 떠나고나면 결국 남는 것은 직장인이 아닌 그냥 '나'일터이니.
지나고보니 사소한 것이었다
회사 안에서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매일이 눈치보는 삶이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누가 크게 깨지고 나갔다더라는 소문이 들리면 불똥이 튀지않을까 조심해야 했다. 내가 쓴 보고서를 들고 간 팀장님이 혹여 혼나고 오시지 않을까, 회의실에서 갑자기 USB가 인식이 되지않아 임원이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 오늘 내가 받은 전화가 혹시 모니터링은 아니었을까.... 등의 수도 없이 많은 위험요소(?)속에서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5년을 버텨냈다.
되려 그 때는 무디어져 그 긴장감을 잘 인지하지도 못했으나, 회사를 떠난 지금은 그 생각만해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아마도 나의 성격이, 그 때는 잘 해내고 싶었던 내 욕심과 야망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을거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매사에 조금만 덜 신경썼더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내 실수는 과감하게 인정하고 수정하면 그만이었고, 누구에게든 내가 할 말은 더 당당하게 말해도 되었다. 때로는 가기 싫은 회식을 빠져도 괜찮았고, 아닌 것은 아니라도 말해도 되었다. 그 당시에는 마치 전부 같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억조차 잘 나지않을 만큼 작고, 사소한 일이었다. 그 사람도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내 정신 건강은 둘째 치더라도, 오히려 그런 태도가 나의 회사생활을 더 건강하고 적극적이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조금 더 가깝게 지내도 되었다
이건 특히 지극히 내 개인적 성향이 담긴 이야기이지만, 나는 회사 내에서든 밖에서든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편이다. 아직도 무엇이 맞는 것인지 정답은 모르겠다. 입사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은 경고를 너무 새겨들은 탓인지, 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경계했다. 선배는 항상 깍듯이 선배로 대했고, 친해진 동갑내기 후배한테도 끝까지 존댓말을 했다. 외부 사람들과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가깝고 편하게 대했지만, 절대 그 이상의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나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변에 충분히 많았지만, 나는 나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조금은 경계심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된다. 일을 통해 만났고, 동료에 불과했지만 충분히 진심을 보여준 사람도 많았고, 한 명의 사람으로 좋아하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그 때 조금 더 가깝게 지냈다면 회사를 떠난 지금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아주 긴 직장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또 언제 다시 직장인으로 살게 될지 모를 노릇이다. 어쨌든 한 번의 직장 생활을 통해 느낀 점들을 이렇게 되돌아보면 공통된 하나의 사실은 내가 '한 치 앞만 내다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멀찌감치 서서 장기적인 내 인생을 그려보지 않았기에 고유한 나 자신을 고민해보지 않았고, 사소한 일에 마음 졸이며 나 스스로를 아프게 했다. 앞으로는 어떤 길에서 무엇을 하든 그 시절 그 때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같다. 때로는 흘려 보낼 줄도 알아야 하며, 또 삼켜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