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퇴사를 하고 나니 사람들이 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한다. 새삼스레 SNS 팔로우 신청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체 뭐하고 지내냐고 묻는 연락도 종종 받는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퇴사를 꿈꾸던 시절의 나도 먼저 퇴사한 사람들의 근황을 궁금해하고는 했다. 과연 퇴사를 해도 잘 살 수 있는 건지, 재취업은 잘 되는 건지...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궁금하기 마련이다. 특히 나처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되도록 많이 알고 싶고, 시행착오는 줄이고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을 꼽으라면 단연 "퇴사하니까 좋아?"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조건 "YES"이다. 아마 굳이 대답으로 듣지 않아도 표정에 쓰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나도 퇴사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에게 답을 구한다는 것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건 준비가 되지 않은 퇴사에는 나는 무조건 반대표를 던진다.
퇴사 후 갈 곳은 있고?
일반적으로 퇴사를 앞두고 준비가 되었다 함은, 다른 곳에 취직이 되었는가, 혹은 공부라든지, 다른 할 일을 정했는가를 의미한다. 나는 이 중 어떤 것도 택하지 않고 그냥 퇴사해 버렸음에도, 직장인의 세계에서 마치 불문율로 통하는 '반드시 갈 곳을 정해두고 그만두어라'라는 말에는 100퍼센트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계속 직장인으로 살 거라면'.
퇴사의 목적이 직장을 옮기는 것이라면, 현업에 있을 때 직장을 옮기는 것이 '나의 몸 값'에 확실히 이득이다. 나 역시도 퇴사할 때, 이런 조언을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그 당시 나의 퇴사의 목적은 오로지 '이직'이 아니었기에 딱히 새겨듣지는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진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직장인으로 살 거라면'을 덧붙인다.
나의 경우, 보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혀 준비가 없이 무작정 퇴사해버린 케이스다. 그만큼 주변의 우려도 많았고, 아직 어려서 뭐를 잘 모른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퇴사 후 나에게 어떤 시간이 필요한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비워낼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꾸역꾸역 채우기만 해서 곧 넘쳐버릴 것 같은 나를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퇴사 후를 준비했다.
돈은 버틸 만큼 충분한가?
퇴사를 고민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금전적인 문제이다. 매 월 따박따박 꽂히던 월급을 포기하는 것도 힘든데, 이젠 수입도 없이 고정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간혹 밀린 카드값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시 회사를 그만두게 될까 봐 일부러 무리한 대출로 집을 샀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금전적인 문제는 퇴사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쪼들리면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고, 다음 진로에 있어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퇴사에 앞서 금전적인 준비를 갖추는 것은 필수이다. 다행히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꾸준히 저축해왔기에, 어느 정도의 잔고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퇴사를 결심할 때부터 길게는 1년까지의 백수생활을 계획했기 때문에 그만큼 버틸 수 있을 돈을 대략적으로 마련해두었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 준비 덕에 불안한 마음에 휩쓸리지 않고 추운(?) 백수생활을 무사히 버텨내고 있다.
나의 마음은 확고한가?
다수가 틀렸다고 하는 길을 가려면, 두꺼운 낯과 강한 멘탈을 가져야 한다. ㄱㅆ마이웨이....라고 부르고 싶다. 퇴사 전에는 퇴사를 만류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퇴사 후에는 나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넘쳐난다. 듣고 있노라면 때로는 그들의 말에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주제넘은 조언에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스스로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그들은 지금 내가 가는 길을 가보지 않았다'.
"너 지금 이렇게 나가면 후회한다? 밖이 얼마나 추운지 모르는구나? 그리고 회사는 어딜 가나 다 똑같아"라고 나에게 조언하던 한 임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 회사에서만 20년을 넘게 보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퇴사를 해본 적도, 다른 곳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무조건 퇴사 후 삶이 나빠질 거라고 했다. 물론 나를 걱정해서 건넨 말이었겠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불신을 주었다. 이렇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섣불리 조언하고는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퇴사에 앞서, 나에게 앞으로 쏟아질 무수히 많은 의견을 쳐내고 또 때로는 받아들이며 쉽게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100명의 인간에게는 100개의 삶이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나의 고유한 삶을 찾기 위해 퇴사했고, 그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는 단단해진 멘탈을 가지고 나의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준비가 되었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을 것이며,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대는 유일한 존재이고 그대의 삶 또한 고유하다
- 책 「위대한 멈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