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회의 시선
나는 종종 서른이 되는 순간을 그려보고는 했었다. 다들 서른이 된다는 것을 끔찍해하고는 하지만, 나는 왠지 서른의 나의 모습이 멋있게 그려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정작 그 순간이 되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도 대단하게 기쁘지도 않았다. 나는 딱히 초라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딱히 멋있지도 않은 서른 살의 직장인으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가장 화려하기를 기대했었던 그 서른 살에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른'에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서른 살 여자인 나의 퇴사를 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떠할지.
갑작스럽게(회사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웠겠으나, 나는 전혀 갑작스럽지 않았다) 퇴사를 통보하고 나니, 수많은 면담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직급별로 나를 불러내었다. 당연히 첫 질문은 왜? 였다. 나의 대답을 듣고 나면, 누군가는 무작정 만류했고, 누군가는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모든 과정이 끝나갈 때쯤, 다시 돌고 돌아온 직속 상사의 면담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갑자기 퇴사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혹시 남자 친구가 빵빵해서, 그냥 결혼하려고 그래요?"
불쾌함을 느낄 틈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책상에 돌아와 앉았다. 정체모를 나쁜 기분이 점점 커져갔다. 대단한 계획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퇴사하는 일이 그렇게 비추어질 수도 있음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남자 친구가 빵빵하든 아니든, 퇴사하고 결혼을 하든 아니든 그중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내가 더 어렸다면, 혹은 남직원이었다면 이런 질문이 붙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현실 또는 편견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도, 현실 세계는 점점 또렷이 색을 띄워나갔다. 여유가 생기면서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고 하면 신부수업을 하는 거냐는 질문이 되돌아왔고, 헤드헌터들은 미혼인지 기혼인지(혹은 육아휴직 중인지..)를 물었다. 전부 이해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기에, 기분이 나쁜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그저 나를 보는 사회의 시선을 여실히 느끼게 되어 씁쓸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도 나는 퇴사를 했고, 그런 시선에는 별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나는 내 나이에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스스로 벗어내었고, 그로 인해 많은 책임이 따르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 시선을 견뎌내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런데 나의 인생이,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그렇게 단순히 흑백으로 구분 지어진다는 그 사실은 여전히 조금 슬프다.
이제 나는 30대가 결과가 아닌 과정을 그리는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고, 앞으로 나의 방식으로 30대를, 또 그 이후를 그려나가려고 한다. 그 과정은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지기를,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도 그 자체의 색으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