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일을 만드는 법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일을 잘 마치고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하면 오늘을 버틸 성취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람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그게 참 고민이었다. 보람이 없이 기계처럼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던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나만의 결론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주어진 일을 잘 마쳐야겠다는 책임감은 있어도, 이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직업정신'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책임감'과 '사명감'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나, 그 무게는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맡은 일은 꽤나 책임감 있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지시받은 일을 지체 없이 수행하고, 문제없이 완료하는 것이 나의 의무였으니 그것만큼은 내 몫을 다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일 안 하려고 뺀질거린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최소한 '책임감'있게는 일하지 않았나 자부한다. 그럼에도 '사명감'을 논하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명감은 나의 위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내가 회사 내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며,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알 때, 나의 일의 가치는 달라지게 된다. 내가 다녔던 곳은 대기업인 데다가 특히나 부서 간 업무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른 회사는 다녀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단연 상위권일 것이다.......) 곳이었다. 그렇게 큰 조직에서 신입사원인 나에게 처음 주어진 일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 노가다성 업무를 반복하다 보니 슬슬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이 쓸데없어 보이는 업무가 회사의 이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건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설득시켜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까라면 까
시간이 지나 상위부서로 옮기고, 조금은 넓은 관점에서 업무를 익히다 보니 우연히 내가 하던 그 '쓸데없는 일'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전히 효율적인 일은 아니긴 했으나, 충분히 목적이 있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그 일을 시켰던 사람조차 그 목적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그 업무를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내가 신입이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기꺼이 그 일을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회사에 분명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일로부터 사명감이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작은 부분임에도 회사에서 분명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 확신이 나에게 소속감과 사명감을 부여해주는 것이 아닐까.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하고, 나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 나의 위치를 이해하고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연초에 상무님께 보내는 (의무적인) 건의사항에는 '회사의 비전을 사원들과 충분히 공유해주세요'라고 쓰기도 했다. 결국 나는 끝까지 철저한 사명감을 갖는 데는 실패했으니 퇴사하게 되었겠지만, 나중에 내가 관리자가 되면 혹은 리더가 된다면 사명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만큼은 얻게 되었다.
사명감 있는 직원은 분명 그 일을 빛나 보이게 한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해 준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한 번은 용산 근처에 있는 유명한 고깃집에 갔을 때였다. 그 가게의 직원들은 20대 초반이 될까 말까 해 보이는 어리고 외모가 자유로운(?) 직원들뿐이었기에, 나는 서비스는 별로겠군.. 하고 섣불리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틀렸다. 그 직원들은 어느 고급 식당보다 프로페셔널했고, 열정적이었다. 고되 보이는 일을 누구도 대충 하지 않았고, 힘든 티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 식당을 나오면서 얘기했다. 이 곳의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직원 교육을 시키는지 안 봐도 알 것 같다고. 그때는 굳이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그 직원들은 분명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좋은 사장님이 그들이 그렇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에서도 꽤나 유명했던 7호선의 기관사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유명해지기 전, 출근길에 그분이 운행하시는 지하철을 우연히 탔다. 역을 지날 때마다 익숙한 기계음이 아닌 실제 목소리와 오늘도 힘내라는 한마디가 더해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역 하나하나 지날수록 그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훈훈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그 열차의 모두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분은 아마도, 본인의 직업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의 일을 안전하게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것 그 이상으로 가치 있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얼마 안 되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느낀 것이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다른 어떤 조건보다도,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나의 사명감 있게 일한다면 더 적은 돈도, 조금은 더 고된 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로 인해 나의 일이 빛나 보였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명감의 힘이 아닐까.
+오늘 내가 이 글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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