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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쥬쥬 Feb 09. 2019

내가 퇴사한 진짜 이유

용기와 회피, 그 중간 어디에서

나는 단지 회사가 싫어서 퇴사한 것은 아니었으나, 회사가 정말 좋았는데 퇴사했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확실히 회사에는 문제가 많았다. 미래는 어두워보였고, 답답한 기업문화나 넌센스한 사내 정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퇴사 결심이 커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들은 감내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연차에 따라 그냥 익숙해져 버리는 것도, 포기하게 되는 것도 생기게 되는 법이니 그저 회사 욕 몇 마디 하면서 참아내면 어김없이 다음 달의 월급은 들어오니까. 그리고 그것이 직장인의 삶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한 것이었다. 나는 마치 인생의 최종 목표를 이미 달성한 사람처럼,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딱히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건 온전히 나의 잘못이다. 다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순간만큼은 안정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안주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너무 불만족스러웠으나, 대기업의 이름과 직급이 붙은 나의 명함만큼은 반짝였으니 그것에 기대어 나의 삶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번은 나의 명함에서 '회사의 이름'이 빠지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얼마큼의 경쟁력을 가진 개인일까. 나는 실제로 연초마다 흔히 말하는 칼바람이 부는 것을 목격했었다. 옆 팀의 팀장님도, 내가 모시던 임원도, 또 어떤 팀의 누구누구도 올 해의 대상자가 되어 회사를 떠났다. 경쟁이 치열한 사기업이었던만큼 그 상황 자체를 단순히 옳다 그르다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많은 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준비되지 못 한 채로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겪는 패닉을 보고 들으면서, 나 역시 긴장감과 두려움 같은 것이 커져갔다. 직장에서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는 법이다. 아빠는 열심히 하면 되지 나약하게 왜 그런 걱정부터 하냐고 꾸짖었지만, 내가 경험한 회사는 일만 열심히 한다고, 그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나의 창창하고 영원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곳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남은 직장생활을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수는 있었지만, 나에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바로 새로운 인생을 다시 꾸려나갈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나의 이름'만으로도 살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퇴사 후, 후회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썼었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았다. 말버릇처럼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그럼에도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다시 달콤한(?) 회사생활에 안주하고, 또 고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의미 없는 회한이긴 하지만 그때 조금 더 열정적으로 행동에 옮겼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자꾸만 안주하는 내가 싫어서, 차라리 회사를 떠나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내 꿈은 회사원이 아니었고, 내 인생의 최종 목표도 이 곳은 아니니 떠나도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수입이 끊길 것도 문제였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그럭저럭 잘 맞추며 살아온 나에게는 그것을 벗어던지는 것은 그만큼이나 큰 문제였다. 우습지만 대기업에서는 흔히 '성골'이라고 불리는 '공채'라는 타이틀을 떼어버리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그 당시에는 큰 고민이었다. 이렇게나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가졌던 내가 이 고민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쉽지 않았고, 시간이 걸렸다.


많은 고민과 생각이 스쳐가는 시간 동안 나는 꾸역꾸역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다. 회사를 떠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답답한 나를 떠났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결정이었다. 누군가는 용기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회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환경에서 나를 바꾸어나갈 자신이 없었고 나약했으니,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극단적으로 환경을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어쩔 수 없이 나의 몫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 퇴사 후 달라진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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